1987년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되면서 기계 산업 분야에만 전념하던 현대정공이 자동차 업계에 새롭게 등장했다. 때마침 전국에 레저 붐이 일어나 사륜구동 RV 차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현대정공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신차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신차 개발을 ‘현대자동차’가 아닌 ‘현대정공’이 맡게 된 이유는 정주영 회장의 후계구도 형성을 위한 탕평책 때문이었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사장 체제로 운영됐으며, 현대정공은 장남인 정몽구 사장이 지휘하고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장남에게 후계를 넘기고 싶었으나 창립멤버였던 동생을 쉽게 밀어낼 수 없었기에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 해제를 기점으로 장남에게도 후계자가 되기 위한 기회를 열어준 것이었다.
기회를 얻은 정몽구 사장은 1989년부터 프로젝트명 M-카의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주요 부품의 국산화가 역부족이라고 판단해 협력관계에 있던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1세대 파제로에 대한 라이센스를 취득한 후 신차로 도입하게 된다.
1990년 울산 공장에 생산설비를 갖추기 시작해 1991년 9월 16일 첫 번째 차량을 생산했으며, 9월 25일에는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갤로퍼’의 신차발표회를 개최하고 10월 1일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차명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경주마’라는 의미. 5인승 기본형 모델과 6인승 고급형 모델로 출시된 갤로퍼의 출시 당시 가격은 각각 1,175만원, 1,295만원이었다.
갤로퍼의 외관은 1세대 파제로의 모습을 그대로 도입해 당대의 경쟁 차종들보다 심미적인 우위를 선점했다. 첫 출시 모델의 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73마력, 최대토크 14.9kg.m의 2.5리터 직렬 4기통 디젤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의 조합. 연비는 17.3km/L를 기록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출력을 높인 2.5 디젤 터보 모델과 3.0 V6 가솔린 모델을 추가로 출시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주력인 디젤 모델은 낮은 엔진 회전구간에서 터지는 최대토크로 운전자들에게 ‘힘이 좋다’는 인식을 심어줬으며, 대구경 휠과 높은 지상고로 인해 일반도로와 비포장도로 모두 수준급으로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한편, 갤로퍼는 두 번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갤로퍼 대장정’ 이벤트를 통해 당대의 국산 사륜구동 SUV들보다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고, 경쟁 차종에 비해 잔고장률이 낮아 품질에 대한 신뢰를 다졌다. 갤로퍼의 다양한 마케팅 전략은 판매량 급등으로 이어져 아세아자동차의 록스타, 쌍용자동차의 코란도 등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 52%까지 선점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국산 SUV 최초로 4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해 상품성을 높였고, 전장 길이가 짧은 숏바디 모델 갤로퍼 S를 출시했다. 1993년에는 2.5 디젤 터보 엔진에 인터쿨러 시스템을 추가해 출력을 100마력 가까이 끌어올리기도 했으며, 1994년에는 헤드램프를 사각형 모양으로 변경하고 ABS와 LSD를 적용한 상품성 개선모델 ‘뉴 갤로퍼’를 선보였다.
갤로퍼는 출시 이후 다양한 파워트레인과 5~9인승 등의 모델 구성으로 폭넓은 라인업을 선보였으며, 1994년 말에 생산대수 10만대를 돌파했다.
1997년에는 내외관을 업그레이드시킨 ‘갤로퍼 2’가 출시된다. 그러나 때마침 터진 IMF의 여파로 현대정공이 분할되어 현대모비스로 이름을 바꾸고 자동차 부품산업에만 전념하게 되면서 자동차 부문은 현대자동차에서 담당하게 됐다.
1998년에는 '3.0 V6 LPG' 모델, 그리고 숏바디 모델의 디자인을 개선한 ‘갤로퍼 2 이노베이션’을 각각 출시했다. 이후 3.0 V6 가솔린 모델을 제외하고 세제혜택의 변화에 따라 승합차로 분류되기 위해 새로운 라인업을 구축했으며, 2000년부터는 현대자동차 엠블럼을 장착하고 운전석 에어백을 적용하게 된다.
갤로퍼 2는 동급에서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으나, 엔진 실린더 블록 내구성 문제와 새로 도입된 환경규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등의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아울러 개선되지 않고 정체된 실내 인테리어와 일반 승용차 대비 빈약한 편의장비도 소비자들의 불만으로 작용했다.
또한, 벤츠의 직렬 5기통 디젤 엔진과 다양한 편의장비를 적용해 인기를 끌던 쌍용자동차 무쏘가 1998년 고급화 전략을 바탕으로 부분변경을 단행하면서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해 갤로퍼 2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2000년대 초반에는 환경규제를 만족시키는 커먼레일(CRDI) 디젤 엔진을 장착하고 안전성을 갖춘 새로운 차종들이 등장했고, 갤로퍼 2의 시장 경쟁력은 크게 악화됐다. 결국 2001년 출시된 상위 차종 테라칸에게 완전히 자리를 내어준 2003년, 갤로퍼는 12년의 여정을 마치고 단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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