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되며 다시 승용차를 만들 수 있게 된 기아는 그해 곧바로 두 가지 차종을 내놓는다. 하나는 미국 포드, 일본 마쯔다와 함께 월드카로 개발한 소형차 프라이드, 나머지 하나는 마쯔다 카펠라를 국산화시킨 중형차 ‘콩코드’였다.
1987년 10월 출시된 콩코드는 1982년에 나온 4세대 카펠라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다. 첫 출시 당시에는 1,998cc 가솔린 SOHC 엔진에 수동 5단 변속기를 탑재하고 최고출력 99마력, 최대토크 18.5kg.m를 발휘했다. 전륜구동 방식으로 최고속도는 175km/h, 0-100km/h 가속에는 약 12초가 걸렸다. 가격은 LX 1천131만5천원, GXL 1천381만원.
콩코드는 작고 가벼운 차체에 2.0리터 엔진을 얹어 강한 힘을 자랑했고, 상위 모델인 현대 그랜저보다도 가속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고속도로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울러 당시로는 선구적인 맥퍼슨 스트럿 방식의 사륜 독립 서스펜션을 장착해 우수한 핸들링과 승차감을 자랑했다.
1988년 4월에는 ‘콩코드 디젤’이 나왔다. 2.0리터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72마력, 최대토크 13.8kg.m를 발휘했고, 약 26km/L에 이르는 우수한 연비를 자랑했지만 진동 및 소음 문제로 인기를 얻지 못하며 빠르게 단종됐다.
이후 1.8리터 SOHC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콩코드 1800’과 LPG 택시 모델이 추가됐으며, 7월에는 LCD 계기판을 적용한 ‘콩코드 2.0 DGT’ 모델이 라인업에 더해졌다. 90년대 초에는 왜건형 모델도 개발됐으나 시장성 문제로 시판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콩코드는 특히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장시간 운전해도 피로가 덜하고, 내구성이 좋아 소모품 교체 비용이 적게 드는 차’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품질을 인정받았다.
또한, 점잖고 고급스러운 외관 디자인 덕분에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사랑받으며 ‘고소득 전문직의 오너 드라이브 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쟁모델에 비해 좁은 실내 공간은 판매에 발목을 잡았다.
콩코드는 국내 모터스포츠 역사에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프로레이서 박정룡(현 아주자동차대학 교수) 선수가 콩코드를 타고 활약한 덕분. 1982년 기아에 입사해 테스트 드라이버로 활동한 그는 마쯔다에 테스트 드라이버로 파견을 다녀오며 고급 운전 기술을 습득했다. 그리고 1987년부터 국내에서 활약, 기아 프라이드를 타고 국내 레이스를 휩쓸었다.
그러나 워낙 실력 차이가 크자 대회 주최 측은 박 선수를 무조건 최하위에서 출발시키는 등 여러 가지 핸디캡을 적용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승리를 이어가자 주최 측은 아예 레이스카로 부적합한 중형차를 타도록 요구했고, 이에 박 선수는 기아 콩코드를 타고 레이스에 출전하게 된다. 하지만 우수한 퍼포먼스를 지닌 콩코드는 오히려 박 선수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고, 그는 주최 측의 기대를 저버리고(?) 이후에도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한편, 1991년에는 부분변경을 거쳐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의 볼륨을 키운 ‘뉴 콩코드’가 출시됐으며, 1992년 3월에는 최고출력 136마력의 2.0리터 DOHC 엔진을 탑재한 ‘뉴 콩코드 DOHC’ 모델이 라인업에 더해졌다. 1993년 2월에는 국산 중형차 최초로 에어백을 적용(옵션 80만원)하기도 했다.
콩코드는 품위 있는 외모와 우수한 주행 성능으로 각광받았지만, 1982년에 나온 카펠라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 차종들에 비해 상품성이 떨어졌다. 결국 콩코드는 직계 후속 모델 없이 1995년 크레도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게 된다. 콩코드는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총 16만3천279대가 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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