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합작 파트너인 지엠과 결별한 대우는 독자 개발한 차종들을 한꺼번에 시장에 투입해 업계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먼저 1996년 11월, 르망의 후속 모델 ‘라노스’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듬해 2월에는 에스페로의 후속 모델 ‘누비라’를 내세워 기세를 이어가고자 했다.

32개월 동안 약 3천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된 누비라는 대우의 월드카 개발 전략을 통해 한국의 부평 연구소와 영국의 워딩 기술센터, 독일의 뮌헨 연구소가 함께 참여해 일괄적으로 개발이 진행됐다. 아울러 라노스에서 처음 도입한 동시공학 개발(기본 설계부터 기술, 생산, 정비, 판매 등 전 부문 참여)을 통해 개발기간과 비용을 단축했고, 부품공급업체가 개발에 참여하는 게스트 엔지니어링 기법도 적용했다.

누비라의 외관 디자인에는 대우 디자인 포럼, 미국 IAD, 이탈리아 이데아, 일본 DCI가 참여했다. 그중 이데아의 디자인이 선택됐고, 여기에 이탈디자인이 제안한 3분할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해 완성했다. 또한, 세계적인 동급 차종들보다 기본 골격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175차례의 충돌 시험을 거치며 당시 유럽과 미국의 안전규정을 모두 만족시키는 등 안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세계를 누비는 우리의 차’라는 뜻을 담은 순 우리말 이름을 붙인 ‘누비라’는 1997년 1월부터 대우 군산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1993년부터 4년간 약 1조원의 비용을 들여 준공한 대우 군산공장은 연간 30만대의 생산 규모에 당시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들에 뒤지지 않는 첨단 설비를 갖추고 혼류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주행시험장과 수출전용 부두까지 갖췄다.

1997년 2월 18일, 신차발표회와 함께 누비라의 판매가 시작됐다. 라인업은 1.5 DOHC, 1.8 DOHC 두 가지 모델로 구성됐으며 1.5 DOHC 엔진은 최고출력 110마력, 최대토크 14.3kg.m, 1.8 DOHC 엔진은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18.4kg.m를 발휘했다. 변속기는 5단 수동을 기본으로 ZF사의 4단 자동변속기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가격은 각각 819만원, 916만원으로, 당시 경쟁 차종이던 아반떼와 세피아보다 약간 높은 가격이었지만 편의사양이 더 풍부하게 적용됐다.

누비라는 시판 첫날 하루 8,389대가 계약되며 단일차종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고, 출시 초기에는 월 1만대 이상 팔리며 아반떼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더불어 같은 해 4월에는 연이어 출시한 중형 세단 ‘레간자’가 누비라의 시판 첫날 계약 기록을 깨는 등, 대우는 승승장구하며 기아를 제치고 1994년 이후 3년 만에 내수시장 2위를 탈환했다.

1997년 6월에는 왜건 모델인 ‘누비라 스패건’이 출시됐지만 내수 시장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고 수출 비중이 높았다. 해치백 모델인 ‘누비라 D5’는 수출만 이뤄지다가 1998년 9월 국내에도 출시됐고, 시판 초기에는 누비라 전체 판매량 중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대우의 내수시장 2위 탈환에 큰 공을 세운 누비라였지만, 이탈디자인에서 만들어진 라노스와 레간자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고 디자인의 일관성도 부족하다는 평가에 따라 출시 2년만인 1999년 2월, 부분변경 모델 ‘누비라Ⅱ’를 선보였다. 약 2천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된 누비라Ⅱ는 라노스와 레간자의 패밀리룩에 충실한 디자인을 갖췄고, 실내 소재의 고급화와 편의장비 보강이 이뤄졌다.

누비라Ⅱ는 내수시장에 세단 모델만 출시되고 해치백과 왜건 모델은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아울러 주력 모델인 1.5 DOHC는 편의사양에 따라 세 가지로 세분화됐으며, 1.8 DOHC 모델은 2.0 SOHC 모델로 대체됐다. 가격은 1.5 DOHC 모델 770만원~875만원, 2.0 SOHC 모델 940만원이었다. 누비라Ⅱ는 2002년 10월, 후속 모델인 라세티에게 바통을 물려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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