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의 국내 대형차 시장은 현대 그랜저의 독무대였다. 기아 콩코드가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대우 임페리얼 또한 그랜저를 막지 못했다. 그에 따라 기아는 대형차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신차 개발을 서둘렀다.
1992년 4월 28일, 기아는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김종필 당시 민자당 최고의원과 정재계 인사 등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차발표회를 개최하고 5월 초부터 전국 판매를 시작했다. 일본 마쯔다 자동차의 루체 5세대 모델을 베이스로 3년 6개월 동안 2천억을 투입해 개발한 기아의 신차는 ‘잠재적인’이라는 의미의 단어 ‘potential’을 사용해 ‘포텐샤’로 차명을 결정했다. 당시 가격은 3.0 자동변속기 모델 3,130만원, 2.2 자동변속기 모델 2,160만원, 수동변속기 모델 1,980만원이었다.
포텐샤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루체 5세대 모델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각지고 평면적인 형태의 실루엣은 넓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중세 기사의 투구를 닮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큼직한 헤드램프, 수평적인 캐릭터라인과 사각의 리어램프 등 모든 부분이 통일된 디자인 컨셉을 유지했다. 포텐샤의 외관 디자인은 격식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랫동안 육군 의전차량으로도 사용됐다.
포텐샤의 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200마력의 3.0리터 V6 DOHC 엔진과 최고출력 120마력의 2.2리터 SOHC 엔진에 자체 개발한 4단 전자제어 자동변속기를 채용했다. 연비는 각각 8.3km/L, 9.0km/L를 기록했고, 2.2리터 수동변속기 모델은 10.2km/L였다. 서스펜션은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멀티링크 방식으로 대형 세단다운 안락한 승차감의 기본 조건을 갖췄다.
포텐샤의 스펙 중 가장 주목할 점은 후륜구동 방식을 채용했다는 것. 당시에는 제작단가 절감, 넓은 실내 공간 확보, 연비 개선 등의 이유로 덩치 큰 세단들도 대부분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했지만 포텐샤는 후륜구동을 고집했다. 후륜구동의 장점인 이상적인 무게배분 실현과 전륜구동 대비 뛰어난 주행능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포텐샤는 대형 세단에 걸맞은 다양한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다. 전자감응형 서스펜션, 프로젝션 헤드램프, 천연가죽 열선시트, 뒷좌석 이지억세스 등의 다양한 장비들은 지금의 대형 세단과 비교해도 대등한 수준이었다. 또한, 포텐샤의 에어컨은 고정식이 아닌 스윙 방식으로 작동했는데, 바람이 에어벤트를 통해 원형을 그리며 방출되어 방향 조절 없이도 전체적인 온도 조절이 용이했다.
1992년 출시된 포텐샤는 대형차 시장의 강자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리터 엔진을 추가해 라인업을 완성했고, 3.0리터 V6 엔진과 당대 최고의 편의장비를 적용한 프레지던트 모델까지 추가하며 선택의 폭을 넓혔다. 하지만 대형 세단의 지위를 1997년 등장한 엔터프라이즈에게 넘겨주고 부분변경을 단행하며 준대형 세단으로 변신하게 된다.
1997년 출시된 부분변경 모델 ‘뉴 포텐샤’는 차제 디자인이 기존보다 스포티하게 다듬어졌고, 파워트레인은 2.0리터 DOHC 엔진과 2.5리터 V6 DOHC 엔진으로 변경되고 수동변속기 모델이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아울러 기존의 불필요한 옵션을 제외하고 판매 가격을 20~50만원 낮추는 등 당시 유행하던 신차 가격 인하 전략을 따라갔다.
이후 중형에서 준대형, 대형까지 아우르는 현대 그랜저 XG의 출현으로 포텐샤의 판매량은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기아의 새로운 중형 세단 옵티마가 출시되어 포텐샤와 일부 고객층이 겹치기도 했다. 결국 포텐샤는 IMF 사태로 인한 준대형차 시장 축소와 소형차 시장 확대의 폭풍 속에 판매량이 현저히 감소하다가 출시 10년 만인 2002년, 강화된 환경규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고 옵티마 리갈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끝내 단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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