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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머 H1 (AM제네럴 허머) 시승기

사막을 누비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등공신인 험비, 그 험비의 민수용 버전인 허머를 시승했다. 시승차는 AM 제네럴 시절에 만들어진 차로 10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지만 대단한 위용과 결코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글 / 민병권 (메가오토 컨텐츠팀 기자)
사진 / 박기돈 (메가오토 컨텐츠 팀장)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젖은 수건을 쥐어짜듯이 땀이 뚝뚝뚝 떨어지는 후덥지근한 날씨. 이쯤 되면 복날이 아니라도 몸보신 생각이 간절해지건만, 어쩌다 보니 반계탕도 아닌 패스트푸드점의 카레 치킨 두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고 시승차를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나마 공복이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시승할 차는 덩치로 보나 존재감으로 보나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 배속에 뭐라도 집어넣지 않고 나갔다가는 이쪽에서 먼저 넉다운이 될 것만 같았다.

이번 시승차는 무려 ‘허머(Hummer)’인 것이다.

대단한 차라는 것은 둘째치고, 문제는 크기였다. 스타렉스와 엇비슷한 길이와 높이는 그렇다 쳐도, 차체 폭이 무려 2.2m나 되는 것이다. 간혹 가다 큰 차를 운전하게 되면 혹시나 실수를 해서 어디 긁어먹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다가 지치기 때문에, 급기야는 다루기 쉬운 작은 차만을 동경하게 된 필자로서는 상당한 강적을 만난 셈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기회를 놓칠 수도 없었다. 요즘이야 좀 덜한 듯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로부터 ‘꼭 한번 타보고 싶은 꿈의 차’로 손꼽히던 동경의 대상 아닌가. ‘큰 차’, ‘높은 차’를 비호감으로 분류해왔던 필자도 허머-험비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적인 감정을 품어왔다. TV나 영화 같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지겹도록 많이 보아왔으니 이제는 시큰둥해질 만도 하지만, 아직도 간혹 가다 주한미군의 험비를 길에서 만나게 되면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햐! 정말 멋지게 생겼단 말씀이야~’ 무엇이든 타고 넘을 것 같은 커다란 바퀴! 차선에 넘치도록 떡벌어진 당당한 어깨!! 납작하면서도 높이 떠있는, 기능미 넘치는 차체!!!

바로 그 차, 정확하게 말하면 그 민간버전이 시승을 기다리고 있다니 ‘무모한 도전’이라 하여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H2나 H3라면 모를까, 오리지널 허머는 국내에 몇 대 있지도 않을뿐더러, 지난 6월에 단종되기까지 했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단종 얘기도 꺼냈으니 차 타기 전에 허머에 대해 정리부터 해보자. 민간용 허머가 세상에 나온 지도 어느덧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게다가 그 기본 모델인 군용차 험비가 미군에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무려 20여 년 전의 일. 차의 성격상 수십 년씩 활동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으니 나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다목적 군용차로 개발된 강력한 험비의 민수용 버전이 허머다

일명 ‘지프차’로 통했던 다목적 소형 군용차와 작은 트럭들을 현대전에 걸 맞는 새로운 형태의 군용차로 통합 대체한다는 목표로 1970년대 말에 시작된 미군의 HMMWV(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 고기동성 다목적 자동차) 개발계획의 산물이 바로 험비(HUMVEE)였다. 방산업체간의 경쟁입찰 과정을 거쳐 선정된 AM 제너럴社의 프로토타입은 개량을 거쳐 1985년부터 실전 배치되기 시작했다. 험비라는 명칭 외에도 앰뷸런스나 병력수송차등 그 형태에 따라 ‘M998’, ‘M1114’ 같은 형식 명이 주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육공트럭’이니 ‘쓰리쿼터’니 하는 명칭을 쓰듯이 병사들간에는 허머(Hummer. 그 뜻은 영한사전참고)라는 애칭이 즐겨 쓰였다.


M151 MUTT(일명 케네디 지프. AM제너럴을 포함한 4개社에서 생산)를 비롯한 기존 군용차들의 자리를 묵묵히 대체해나가고 있던 험비는 1991년 초, 걸프전의 발발과 함께 갑작스레 스타로 떠오른다. 이전까지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이나 관심을 갖는 차였지만 전장을 누비는 활약상이 뉴스채널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알려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민간수요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마침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부수입이 필요했던 AM제너럴은 험비의 민수용 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애당초 험비는 오로지 군납 계약을 따내기 위해 만들어진 차였고, 군의 요구조건을 경쟁사보다 더 뛰어난 성적으로 충족시키는 것만이 살길이었기 때문에 일반 시판 따위는 고려할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전장에서는 효율적일지언정 보통의 승용차나 SUV의 관점에서 보자면 단점투성이였다. 하지만 이러한 탄생배경은 오히려 험비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다. 험비의 독보적인 매력에 푹 빠진 이들 중 하나였던 배우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민간용을 만들어달라며 AM제너럴에 떼를 쓰기도 했다.

AM제너럴은 1992년, 군용 험비를 최소한으로 손질해 미국 법규상 ‘3종 트럭’에 해당하는 민수용 버전을 내놓았고, 이때 붙인 상표가 바로 ‘허머’였다. 판매는 나름 짭짤했다. 하지만 딜러망도 없는 작은 규모의 방산업체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차를 파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99년, AM제너럴은 GM에게 허머의 상표권과 판매권을 넘겨주고 자신들은 생산만을 맡기로 했다. (AM제너럴이 GM에 흡수됐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이다.)

대량생산 메이커인 GM은 처음부터 허머라는 차 자체보다 부가가치에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태생적 한계 탓에 수요가 제한적인 오리지널 허머는 얼굴마담으로 데려온 것이고, 대신 그 이미지를 차용한, 훨씬 어리고(?) 시장친화적인 SUV들로 이윤을 남기겠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GM은 오리지널 허머의 이름을 H1으로 바꾸고 허머를 브랜드 이름으로 승격시키는 한편, 자사의 픽업트럭용 섀시를 베이스로 신세대 허머 - H2와 H3를 개발, 출시하였다. H1과 H2의 생산은 AM제너럴에 맡겨졌지만 H3부터는 개발부터 판매까지를 모두 GM이 직접 하고 있다.

오리지널의 입장에서 보면, 군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민간수요만을 위해 만들어진 H2나 H3는 모양만 비슷하게 흉내 낸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 H1이 훈장 주렁주렁 달고 전역한 특수부출신이라면, H2, H3는 군대 근처에도 안 가보고 옷만 밀리터리룩으로 입고 다니는 햇병아리인 셈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타협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정통파인 H1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전역군인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강산이 바뀌는 동안 H1도 나름대로 노력은 많이 했다. 1990년대의 민수용 AM제너럴 허머와 마지막 버전인 GM의 2006년형 ‘H1 알파’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호사스럽게 개량된 것을 알 수 있다. 엔진 출력만 해도 100마력 넘게 증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크게 감소한 H1의 판매대수는 이제 민간용으로서는 그 약발이 다 했음을 말해준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소량이라도 계속 생산해주길 바라겠지만 메이커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카(Cars)’를 보면 크롬으로 치장한 꼬마 허머가 자신은 흙 한번 밟아본 적이 없다고 엄살을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도 그러하다. 오프로드를 날아다니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H2나 H3의 성능만으로도 충분할 것이고, 더군다나 도심에서 폼을 잡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불편하고 가격까지 비싼 오리지널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기름값이니 뭐니 해도 H1의 단종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4년간 오리지널 허머(H1)는 약 12,000대 정도가 판매되었다. 반면 군용 험비는 미국 해병대에서 2만대, 육군에서 12만대 이상을 운용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18만5천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역시 허머를 필요로 하는 곳은 전장이다. 노후 차량도 대체해야 하고 이라크에서 지뢰 공격 등으로 나가떨어진 차량도 바꿔주어야 한다. AM제너럴은 단종된 H1의 생산라인을 험비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GM을 위한 H2의 위탁생산은 계속된다. H2, H3는 변함없이 GM이 허머 브랜드로 판매한다.

거대한 차체, 육중한 몸무게, 넘치는 카리스마

좁은 통로에서 마주치는 차들과 비비적거리느라 한참 만에 지하주차장을 빠져 나와 위용을드러낸 시승차는 오리지널에 가까운 1996년형 4인승 하드도어 오픈탑 모델이다. 실내와 개방된 지붕, 적재함이 롤케이지로 연결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방수포로 지붕과 적재함을 덮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시승차와는 달리 측면 유리창의 프레임 부분이 없는 오픈탑 버전도 있었다. 어쨌든 적재함 위까지 철제 지붕을 씌운 4인승 왜건 모델보다는 한결 군용차의 느낌이 사는 편이다. 초기에는 픽업 형태인 2인승 하드탑과 4인승 하드탑 모델도 있었지만 최후에는 4인승 (풀도어) 오픈탑과 왜건의 두 가지 형태만 남았다. 군용 험비처럼 적재함 위쪽이 경사지게 내려가는 해치백 타입은 후방시야가 좋지 않아 소량만 생산되었기 때문에 민수용에서는 보기 힘들다.


시승차의 밀리터리룩(?)을 살리는 데는 사막용 위장도색을 연상시키는 차체색상(Tan Gross)도 한몫을 크게 하고 있었다. 다만, 군용과는 달리 번쩍거리는 유광도색이라 아쉬웠다. 평소 허머에는 무광도색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왔지만 민수용의 순정 색상은 대부분 유광이었고 잘해야 반광이었다. 제대군인이든 뭐든 민간인의 군복착용은 엄연히 법에 저촉되는 행위라던가. 어쨌든 AM제너럴이 공장에서 직접 차를 팔았던 92년도에는 이 TAN이 유일한 기본색상이기도 했다.

철판조각을 접어놓은 듯 그야말로 군용장비 같은 느낌이 드는 손잡이를 당겨서 투박하지만 무거운 느낌이 없는 철제 도어를 열어젖히자 허머만의 독특한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실내 역시 대시보드등 일부 부품을 제외하면 차체와 비슷한 색으로 마감되어있다. 도어 경첩은 외부로 노출되어 있으며, 문이 일정각도 이상 열리지 않도록 잡아주고 있는 것은 재미있게도 소총 멜빵 같은 나이론 끈이다.

운전석에는 말 그대로 올라타야 한다. 지상고가 40cm나 되지만 사이드 스텝도 없고 문턱도높기 때문에 타고 내릴 때 주의가 필요하다.

실내는 중앙을 앞뒤로 관통하는 넓고 높은 터널이 운전석과 조수석 공간을 나눈다. 조수석이 참 멀기도 하다. 조수석에 애인을 태웠으면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를 외쳐야 할 판이다. 터널만 없었으면 가로로 네 명이 타도 충분할 너비가 아닌가. 이 터널이야말로 허머의 성격을 드러내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만하다. 터널 안쪽으로는 차의 뼈대가 지나가고 있으며 물론 그 박스 프레임 사이에는 엔진과 변속기, 배기파이프와 연료탱크등이 올려져 있다. 탑승자들은 옆구리에 섀시를 끼고 앉는 셈이다.

보통의 바디-온-프레임 구조를 가진 차라면 말 그대로 프레임 위에 차체를 올려놓아 실내공간을 확보했겠지만, 그보다 오프로드 주파 능력을 우선시했던 허머는 높은 섀시와 상대적으로 낮은 차체를 양립시키기 위해 이러한 구조를 채택했다. 같은 이유로 차의 머리부분에 앞바퀴가 자리를 잡았고, 엔진은 자연스레 뒤로 밀려 일종의 프론트 미드십 구조를 갖게 되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터널보다 더 높게 거대한 엔진커버가 위치하고 있고, 뒤쪽으로 이어진 펑퍼짐한 센터콘솔에는 뒷좌석을 위한 송풍구가 뚫려있으며, 뒷좌석 사이의 터널 윗부분에는 화물고정을 위한 고리가 달려있다. 전장에서는 지붕에 달린 기관포를 조준할 때 터널이 발판 역할을 할 것이다.

다시 운전석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프론트 콘솔의 왼쪽편, 즉 운전석쪽을 향하고 있는 부분에는 위로부터 송풍구와 클라리온의 카세트 내장 헤드유닛, 수동식 냉난방 조절장치(에어컨 있음!)가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 오디오 옆의 전원소켓도 그렇지만 시프트 레버 옆쯤에 위치한 파워윈도우 스위치는 당연한 듯 하면서도 왠지 의외다. 유리뿐 아니라 잠금장치와 사이드미러의 조절까지도 수동이 아니다. 군용험비야 도어록이나 시동키 자체가 생략되어 있지만 민수용은 현지가격으로 따져도 상당히 비싼 차니까 억지로 구색은 갖춘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형 모델은 트렌드를 따라가느라 그 정도가 더욱 심해져서 온통 주렁주렁에 번쩍번쩍이다. 본질이 훼손된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형은 정말 탈만 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드니 참 이율배반적이로다.

스티어링휠 안쪽으로 보이는 것은 속도계와 버튼처럼 생긴 경고등들 뿐이고 전압계와 유압계, 수온계와 연료계는 좌우로 분산되어있다. 160km/h까지 표기된 속도계는 km/h 단위가 바깥쪽에, MPH단위가 안쪽에 표기되어 있다. 주행거리는 7만km가 조금 못되었다. 등화장치 및 와이퍼 관련 스위치는 대시보드에 달려있고, 턴시그널과 상향등 조작에 사용하는 스티어링 컬럼 왼쪽의 작대기는 경음기 버튼을 겸한다. 엔진회전계는 아날로그 시계와 함께 오른쪽 끝에 달려있어 운전 중에는 쳐다보기가 힘들다. 그 아래로는 연료탱크 전환 스위치가 있다. …! 이 차는 연료탱크가 두 개다. 초기모델부터 프레임 사이에 달려있었던 25갤런(약95리터)짜리 탱크에 96년형부터는 뒷범퍼쪽으로 17갤런(약 64.4리터)짜리 보조탱크가 추가된 것이다. 차체 오른쪽을 보면 연료주입구도 두 개다. 리어 휀더 앞뒤로 ‘USE DIESEL FUEL ONLY’라고 적힌 주입구가 각각 하나씩 달려있다. 허머의 연비는 4~5km/l 수준. 기름을 워낙 많이 먹으니 탱크 하나로는 갈 수 있는 항속거리가 짧아서 자투리공간에 탱크를 하나 더 달아버렸다. 그러게 기름 좀 작작 먹을 일이지.

V8 6.5리터 180마력 디젤 엔진 얹어

험비도 마찬가지이지만 허머에는 연식과 모델에 따라 몇 가지 다른 엔진(주로 디젤)과 변속기가 사용되었다. 가령, 초기에는 GM산하 디트로이트 디젤社의 150마력, 250lb-ft, 6.2리터 V8 엔진과 3단 자동변속기가 올라갔지만, 시승차에 얹힌 것은 94년부터 적용된 디트로이트 디젤의 6.5리터 V8으로, 170마력의 최고출력과 290lb-ft의 최대토크를 내며, 4단 자동변속기를 쓴다. 같은 96년식 허머라도 엔진은 5.7리터 가솔린(190마력, 300 lb-ft)과 6.5리터 터보 디젤(190마력, 385 lb-ft)의 두 가지가 더 있었다. 가솔린 버전은 인기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했다. 단종 직전의 H1알파에는 300마력의 최고출력과 520lb-ft의 최대토크를 내는 듀라맥스 6600 6.6리터 V8 터보 디젤 엔진이 사용되었다.

굴림방식은 풀타임 4륜구동이며, 트랜스퍼케이스는 HL, H, N, L로 구분되어있다. N은 중립, H는 일반적인 주행에서 사용하는 모드이고, HL은 센터 디퍼렌셜을 잠가 파트타임 4륜 구동처럼 작동하는 모드, L은 디퍼렌셜을 잠그고 기어 감속을 더하는 모드이다. 재미없게도 시승 중 H의외의 모드는 쓸 일이 없었다.

수직으로 발딱 서있는 앞유리를 통해 앞을 내려다보니 광활한 후드가 눈앞에 펼쳐진다. 도무지 차선이 어디있는지 조차 분간이 힘든상황이다보니 주변 차들이 알아서들 피해 주시길기대했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되겠는가? 차가 차이다 보니 피해주기는커녕 사진을 찍는 건지 어쨌는지 차를 바싹 붙이거나 속도를 줄이고는 차를 구경하느라 정신 없는 분들이 많았다. 천만다행으로 시승코스에는 통행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차 크기에도 익숙해질 수 있었다..

팔꿈치를 팔걸이 위에 올리면 ‘HUMMER’ 로고가 투박하게 양각된 스티어링휠이 자연스럽게손에 쥐어진다. 덩치 때문에 버스처럼 커다란 스티어링휠이 달려있을 것 같지만 실제 지름은 상당히 작은 편. 게다가 바퀴크기로 지례 짐작한 것과는 달리 몹시 가볍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럭저럭 편한 시트와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 앉아 슬렁슬렁한 자세로 운전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다만 수시로 느껴지는 변속충격은 아쉬웠다.

시내를 빠져나와 속도를 내도 괜찮을 만한 자동차전용도로에 접어들었다. 보는 눈도 있고 해서(?), 모처럼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보았다. 터널로부터 삐져나온 가속페달은, 왠만큼 밟아서는 엔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알량한 인내심으로 버티며 페달을 밟고 있으니 엄청난 굉음과 함께 속도계 바늘도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소음과 진동… 마침 저 멀리 과속단속 카메라가 보이기에 속도계를 확인해보았다. 어라… 80?
80마일이란 얘긴가? 순간 속도계 눈금이 km/h인지 MPH인지 혼란이 생겼지만 그것은 엄연히 km였다. 허허… 고속도로를 천천히 달리며 교통흐름을 방해하곤 하는 미군 험비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카메라는 감속 없이 무사통과! 이후 의욕을 상실하여, 시승 중 내본 최고속도는 100km/h를 겨우 넘긴 정도였다. 이렇게 육중한 차로 무지막지하게 밟고 다니는 것도 영 밥맛이긴 하다. 맘 먹으면 140km/h까지는 가능하다고 들은 것으로 충분했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교외에 도착하여 요란하기 짝이 없는 엔진의 시동을 끄자 갑자기 온 세상이 조용해진 느낌이다. 그 동안 들을 수 없었던 째깍째깍 하는 아날로그 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스러울 정도였다.

엔진을 보려면 운전석에서 릴리즈 레버를 당겨준 뒤 범퍼가드의 잠금장치를 풀어 앞으로 떨어뜨리고, 다시 후드 좌우 측에 달린 잠금 장치를 젖혀 후드를 앞쪽으로 밀어 올려야 한다. 후드의 부피가 워낙 커서 들어올리기가 힘들 것 같지만 의외로 가볍다. FRP재질이기 때문이다. 후드 가운데 부분을 관통하는 두 개의 후크는 헬기에 메달아 운반하거나 낙하산으로 투하할 때 고리를 거는 연결 포인트. 모양뿐인 H2의 그것은 후드 손잡이에 불과하지만 이건 진짜다! 자기 차를 그런 용도로 쓸 일이 있겠느냐 마는.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에 의외로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서는 허머

조수석쪽으로 삐져나온 연통 덮개처럼 생긴 것이 바로 허머의 콧구멍이다. 각 바퀴의 허브와 디퍼렌셜, 변속기, 트랜스퍼케이스등 주요파트들은 모두 방수처리 되어 있으며, 통기를 필요로 하는 곳은 호스를 통해 이 콧구멍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도하능력 향상을 위한 것으로, 모래나 진흙 등 이물질의 침투를 막는 효과도 있다. 덕분에 허머는 76cm 깊이의 수로를 통과할 수 있다. 스노클 장비를 달아 흡배기를 지붕높이까지 올릴 수 있는 군용 험비라면 1.5미터 깊이까지도 통과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허머는 앞뒤 디퍼렌셜에서 각 바퀴의 허브로 동력을 전달하는 하프샤프트가 여느 차와는 달리 바퀴의 중심축을 통과하지 않는다. 중심보다 10cm 위를 통과하는 샤프트의 구동력이 허브에 내장된 기어에서 최종감속을 거쳐 바퀴에 전달되는 것이다. 덕분에 오프로드에서 장애물과 접촉해 파손될 수도 있는 디퍼렌셜의 위치를 최대한 위쪽으로 밀어 올릴 수 있었다. 4륜 디스크 브레이크 역시 허브가 아니라 디퍼렌셜 쪽에 위치한 인보드 타입이기 때문에 브레이크 로터의 하단이 지상으로부터 43cm나 떨어져있다. 공간이 비게 된 허브 중심으로는 운전석에서 각 바퀴의 공기압을 조절할 수 있는 CTIS(Central Tire Inflation System)가 통과한다. 타이어의 적정공기압은 앞 26, 뒤 28 PSI이지만 CTIS를 이용하면 필요에 따라 최저 10 PSI에서 최고45 PSI까지 바람을 넣고 뺄 수 있다. 아쉽게도 당시에는 CTIS가 옵션사양이라 시승차에는 적용되어있지 않았다.

외부로 많이 노출된 탓에 그 패턴이 허머의 인상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타이어는 굿이어의 랭글러 MT 제품으로, 37X12.50R16.5 사이즈, 즉 타이어 지름 37인치 (약 94cm), 폭 12.5인치 (약 32cm), 휠 직경 16.5인치 크기이며, 휠은 런플랫 기능을 제공한다.

커다란 바퀴와 높은 지상고, 짧은 오버행의 만남은 72도의 접근각을 제공한다. 이탈각은 37.5도. 30도의 경사와 21.8도의 측면경사를 주파할 수 있으며, 높이 56cm짜리 수직 장애물을 밟고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이니 시승 중 몰래 해본 계단 오르기는 애들 장난도 안되는 짓이었다.

허머의 차체는 강철 재질인 도어와 창틀, 지붕, FRP인 후드 외에는 대부분 항공 알루미늄(6061 T6)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알루미늄 판들은 2,800개의 리벳으로 결합되어 있다. 나름 다이어트에도 신경 쓰고 있는 셈이지만, 공차중량은 이미 2.7톤 수준이고 최대중량은 4.6톤에 이른다. (적재함에는 1.7~2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다.)

이 무게를 받쳐주고 있는 4륜 독립 서스펜션은 두터운 로워암과 코일스프링이 인상적인 더블위시본 구조로, 제법 안정적인 코너링 성능을 제공한다. 사진촬영을 위해 급감속과 함께 90도 코너를 도는 상황을 수 차례 연출하기도 했지만 불안한 거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이라크 전에 투입된 험비들은 병사들을 보호하느라 장갑판 추가에 열을 올린 나머지, 늘어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코너링 도중 차가 전복되어 오히려 이로 인한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전복될 당시 지붕 위로 상반신을 내밀고 있었을 사수들을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하다.

코너를 돌다가 갑자기 나타난 과속방지턱을, 바퀴크기도 있고 하니 어찌되나 보자는 심정으로 감속 없이 통과해봤더니 의외로 충격이 컸다. (그러니까 과속방지턱이지!) 적재함에 실려있던 야삽과 OVM공구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통에 과장된 부분도 있었겠지만 ‘요철을 부드럽게 타고 넘는’ 세팅과는 아무래도 무관함을 알 수 있다.

덩치에 비하면 제동력도 꽤 만족할만한 수준이지만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차체가 앞뒤로 흔들흔들 출렁거리는 통에 울렁증을 느껴야만 했다. 알파 버전에서는 서스펜션 개량을 통해 이 부분을 감소시켰다고 한다.

허머의 기능미에 흠뻑 취해있는 사이, 매정하게도 차를 반납할 시간이 다가왔다. 진작에 눈치 챘겠지만 이번 시승에서는 바퀴에 흙 한번 묻힐 일이 없었다. 워낙 짧은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근사한 오프로드를 찾아가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고, 한번 타보고 사진 찍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 되었지만, 본의 아니게도 오프로드의 제왕을 모셔놓고 온로드에서 인터뷰를 끝내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드문 기회이긴 했지만 살다 보면 또 만나겠지 하는 심정으로 허머를 보내주기로 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더라.

시승 협조 : 조이모터스 조정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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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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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
역시 타이어도엄청크구나;
2020-04-25 16:53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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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
전고가 높지만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넘어갈 일은 없어보이네
2020-04-25 16:53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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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
대형버스 스타일 핸들
2020-04-25 16:52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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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
핸들에 험머새기느라 빡세네
2020-04-25 16:52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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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
이런 튼튼한걸 스쿨버스로 만들어야하는데; ㅋ
2020-04-25 16:52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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