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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선의 절묘한 조화 - 기아 K7 VG350

기아차에서도 그랜저급 준대형 세단이 등장했다. 처음으로 차명에 이니셜을 사용한 K7이 그 주인공. 출시되기 전부터 인기 드라마에 모습을 드러내며 궁금증을 유발했던 K7은 디자인과 성능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기아차의 야심작이다.

글, 편집 / 김정균 기자 (메가오토)
사진 / 박환용 기자 (메가오토)


픽업장소에 도착해 확인한 시승차의 색상은 예상대로 흑진주색, 시동버튼을 누르고 출발하자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추격전이라도 펼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시승차는 3.5리터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된 VG350 모델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성능 면에서 기대되는 것이 사실.

포텐샤 단종 이후 실로 오랜 세월이 흘러 기아차의 준대형 세단으로 탄생한 K7의 출시는 여러 모로 의미 있는 일이고, 특히 승용 라인업에선 단비와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로체와 오피러스는 중견 모델들인지라 그 둘 사이에 새롭게 들어선 K7은 분명 신선한 활력소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랜저와 배다른 형제라는 인식과 함께, 현대-기아차 입장에선 그랜저-K7이라는 양동작전으로 타사 동급 경쟁모델 내지는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차 판매량을 기존보다 수월하게 견제할 수 있겠다.

물론 그러려면 K7의 실력이 만만치 않아야 할 터. 최소한 현 시점의 그랜저와 비교해 구관이 명관이란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겉모습은 합격점. 디자인 수석인 피터 슈라이어 영입 이후 온전한 슈라이어 라인으로 만들어진 첫 모델이 K7이라 해도 무방하며, 그 결과물은 기존의 국산차에게 가졌던 기대치를 훌쩍 뛰어 넘은 모습이다.


물론 디자인이란 것은 취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지만, 전체적인 디자인 밸런스가 상당하다. 균형 잡힌 몸매로 인해 군더더기 없는 모습을 바탕으로 직선의 단순화를 표방하는 슈라이어 라인이 모던하고 깔끔하게 가미되어 있다. 차체 크기는 오피러스보다 약간 작지만 휠베이스는 오히려 45mm 길기 때문에 겉에서 보이는 안정감뿐만 아니라 실내 공간 확보에도 여유가 있다. 전륜구동임에도 오버행이 길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또한 만족스러운 부분.


앞모습은 기아차의 패밀리룩인 일명 호랑이 그릴이라 불리는 라디에이터그릴을 중심으로 좌우 균형 잡힌 헤드램프와 안개등까지 연결되는 스포티한 라인 등, 강인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기존 국산 중형급 이상의 온통 크롬으로 도배된 전면 그릴 대신 중앙부를 검게 처리하고 테두리만 포인트를 준 시도는 기립박수도 아깝지 않을 지경.

측면은 말 그대로 군더더기 없고, 앞에서 꺾여 올라가 뒤로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과 도어 하단을 이어주는 크롬 라인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모두 공감하시겠지만 하이퍼 실버 도장 18인치 휠의 디자인은 마치 잘 어울리는 튜닝 휠과 같은 느낌이다.

뒷모습 또한 깔끔하게 정돈되었으며 모델명 없이 K7이란 이니셜만 들어간 것도 이채롭다. 따라서 풀 옵션 사양이라면 뒤에서 따라 달릴 땐 어떤 배기량인지 전혀 알 수 없고 측면 앞 펜더에 붙은 VG350 이란 이니셜을 눈여겨 확인해야만 3.5리터 배기량임을 파악할 수 있다.


빛을 주제로 디자인 모티브를 살린 K7의 존재감은 어두운 밤에 더욱 도드라진다. 전면 헤드램프 테두리엔 새하얀 LED 간접조명 램프가 사용되어 색다르면서도 K7의 디자인과 잘 어울리는 모습. 리어램프 또한 과하지 않게 깔끔한 테두리 형태로 표현되는 빛이 조화를 이룬다. 이렇듯 빛을 이용해 감성을 자극하는 효과는 실내에서도 루프에 달린 무드등을 비롯해 다양하게 적용되어 있다.


실내 분위기는 차분하고 편안한 가운데 외관디자인과 맥을 같이하는 직선적인 라인이 많이 들어갔으며, 공간은 대형 세단 부럽지 않을 정도로 넉넉하다. 전반적인 재질감은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우드나 메탈 대신 폭넓게 사용된 피아노블랙 재질은 K7과 어울리긴 하지만 깨끗하게 관리하려면 신경을 써야겠다.

그간의 기아차들은 시트의 착좌감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해 K7은 흡족한 편. 운전석엔 허리의 요추받침은 물론이거니와 앞쪽에도 무릎 아래를 받쳐주는 부분의 전동조작 버튼이 마련되어 다리가 긴 오너라도 만족스러운 자세 연출이 가능하다. 긴 휠베이스와 더불어 센터 터널을 낮추는 등 여유로운 공간과 편안함으로 대변되는 뒷좌석은 암레스트에 마련된 오디오와 열선시트 조작버튼으로 편의성도 가미했다.


스티어링휠은 재질을 반대로 사용해 의아했던 쏘나타와 달리, 손에 잡히는 가죽 부분의 질감이 우수하다. 계기판은 좌우 두 개의 원이 너무 떨어져 앞트임이라도 해야 할 듯 어색하지만, 어지간한 옵션이 다 들어간 상위트림의 경우엔 가운데 상쾌한 컬러 디스플레이창이 이를 커버해준다. 컬러 디스플레이창은 에쿠스 등의 다른 모델들과 동일하다. 하위트림에는 작고 단순한 디스플레이창이 사용되며 양 옆으로 주유게이지와 수온게이지가 바늘로 표시되는 아날로그 형태로 들어가게 된다.


수많은 옵션들은 말 하면 입 아플 정도로 다양하게 탑재됐다. 특히 전방카메라,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 통풍시트, 스티어링휠 열선 등은 없어도 그만일 호사스러운 장비들. 하지만 더운 여름철의 통풍시트와 추운 겨울철의 열선 스티어링휠은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에 쏙 드는 장비들이다.

한 가지 필요악인 것이 있다면 ECM 사이드미러. 야간에 상향등을 켜고 당당하게 달리는 개념 상실한 운전자들이 꽤나 많기 때문에 ECM 룸미러의 경우 그 덕을 톡톡히 보는 편이지만, ECM 사이드미러는 윈도우 썬팅이 안 된 시승차의 경우에도 빛이 들어오면 너무 어두워져서 오히려 불편했다. 빛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다시 원상복구라도 되면 모를까, 텀을 두고 밝아지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썬팅을 한 상태에서 악천후라도 만난다면 오히려 답답할지도.


이제 빛나는 K7이 과연 빛나는 주행실력도 갖추고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봐야겠다. 상위트림인 시승차의 엔진은 기존 현대-기아차에 없었던 새로운 람다II 3.5리터로서, 제네시스나 에쿠스의 람다 3.8에 버금가는 최고출력 290마력(6600rpm)과 최대토크 34.5kg.m(5000rpm)의 파워를 발휘한다.

역시 뭐든지 신형이 좋긴 하다. 판매의 주력이 되는 2.4와 2.7리터 모델들도 향후 신형 엔진으로의 변화가 예상된다. 트랜스미션은 K7 전체 라인업에 그랜저와 쏘나타 등에도 장착되는 독자개발 6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된다.


정지 상태나 느긋한 주행에서의 정숙성은 최고수준. 한적한 도로에 접어들어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뻗어나가는 속도감이 예상치를 훨씬 상회한다. 엔진의 매끄러운 회전 감각과 나지막하게 들리는 음색이 맞물려 마치 BMW나 인피니티의 3리터 이상급 모델과 유사한 느낌도 슬며시 들고, 초중반 영역에선 시종일관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스런 가속을 만끽할 수 있다. 국산차를 통 털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수 있는 성능이며, 과거와 달리 비슷한 배기량의 수입차들 대비 전혀 꿀리지 않는 실력임에 분명하다.

제원상으론 0-100km/h 가속이 7.2초라고 하는데, 측정해보진 않았지만 기자가 느끼기엔 6초대 중반은 될 법한 기세다. 후반부에 뻗어나가는 맛은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200km/h 근처에 쉽게 도달하며 그 이상도 꾸준히 계속된다.

고속에서의 거동과 차체 안정감은 동급의 다른 모델들 대비 우수하다. 그 기준을 아우토반 태생들과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무난한 편이다. 아쉬운 것은 속도가 높아져도 딱히 무거워지지 않는 핸들링 감각으로서, 이는 대부분의 현대-기아차에서 공통적으로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 그래도 K7의 전반적인 감각은 한 손가락으로 돌려도 될 법한 너무 가벼운 모델들보다는 조금이나마 묵직한 편이다.


K7의 주행성능을 이야기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체가 아닌가 싶다. 시승차인 3.5 모델에는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적용되었으며, 근래 출시된 현대-기아차 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수준이라 칭찬하고 싶다. 오래전부터 국산차를 평가할 때 가장 아쉬운 부분이 너무 물렁한 하체였다면, 이제는 적당히 단단한 세팅을 추구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노면의 요철이나 과속방지턱 등을 지날 땐 통통 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너무 물러서 출렁거리는 것보단 적응되면 이쪽이 훨씬 편하다. 또한, 푹 파인 노면에서 올라오는 기분 나쁜 충격도 꽤나 세련되게 걸러주는 편. 코너에서는 물렁한 차에 적응되어 있다가 옮겨 탄다면 확연한 차이점을 느낄 정도로 노면을 꽤나 잘 움켜쥐면서 내달린다.

수많은 차량들을 시승한 경험을 토대로 기자가 느낀 K7의 하체는 소프트한 쪽에 치우친 그랜저나 캠리보다는 적당히 단단한 알티마와 아주 흡사하고, 국내 도로 환경에 잘 어울리는 볼보나 푸조 모델들의 하체와도 꽤나 근접한 수준이다. 이정도면 준대형 패밀리 세단으로서 다양한 취향과 연령대를 고려해 소프트함과 하드함의 사이에서 절묘한 세팅을 해냈다고 볼 수 있겠다. K7의 전반적인 성능과 밸런스는 전륜구동 세단으로서 높은 완성도와 절정의 실력을 보여준다 해도 손색이 없다.


솔직히 기자는 K7을 시승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떤 차도 완벽할 수는 없는 법. 몇 가지 아쉬운 부분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기자가 시승할 때처럼 적극적으로 달리는 오너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기자도 평소엔 얌전하게 안전운행을 하는 편) 분명 그 부분은 감안해야겠지만, 가혹한 상황에서 잘 견뎌내는 차는 그만큼 기본기도 뛰어나다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지 않겠나.

일단 브레이킹 능력은 시원스런 가속성능 대비 허탈해지곤 한다. 출력이 뛰어나다면 다른 부분들도 그에 어울리는 세팅을 해줘야 하는 법, 너무 잘 달려서 자꾸만 오른발에 힘은 들어가는데 멈출 땐 꽤나 밀려서 잔뜩 긴장해야 하니 오히려 출력이 낮은 2.4나 2.7이 마음은 편할지도. 3.5에는 출력에 비례하는 브레이크 시스템이 필요하겠다.

변속기 이야기도 하고 넘어가자. 수동모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거나 높은 회전수를 유지하며 풀 스로틀 주행을 반복할 때 미션이 정신을 못 차린다던지 큰 충격이 전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은 시승차만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현대-기아의 다른 대배기량 모델들처럼 출력이 높은 모델에는 차별화된 변속기를 적용하는 것이 내구성 측면에서 보다 안정적이지 않을까 싶다. 변속기 오일의 상태를 오너가 쉽게 확인할 수 없는 무교환 방식이라는 것도 유지비를 아끼는 대신 감안해야 할 불안요소가 아닐지.


에필로그
약간의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분명 K7은 너무나 잘 만들어진 차다. 매력적인 디자인, 빛을 이용한 감성요소, 훌륭한 하체와 성능, 풍부한 옵션과 안전장비들까지... 공이 많이 들어간 녀석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국산차의 발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전반적인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 흐뭇하게 다가온다.

내수에선 당분간 풀 체인지 시점이 다가온 그랜저나 SM7, 또는 동급 수입 중형세단들의 대항마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며, 그랜저가 40~50대 오너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 K7은 30~40대 오너들에게 인기를 누릴 법한 성격이다. 또한 K7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기아차들은 K3, K5 등의 이름을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카덴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으니 선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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