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를 앞세워 국산차 시장의 판도를 바꾼 현대는 1985년 2월 후속모델 ‘포니 엑셀’을 내놓으며 기세를 이어나갔다. 같은 시기,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 해제를 앞둔 기아는 포드, 마쯔다와 손잡고 새로운 소형차 ‘프라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우 역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맵시나의 후계자를 점찍어두고 생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대우의 새로운 소형차는 독일 오펠이 설계하고 대우가 생산하며 지엠이 판매하는 월드카로 개발됐다. 차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내구레이스 경주인 ‘르망 24시’에서 따온 ‘르망’으로 붙여졌다. 이름 그대로 뛰어난 성능과 우수한 내구성을 지닌 차라는 의미. 르망은 오펠 카데트를 베이스로 제작됐고, 북미 시장에서는 폰티악 브랜드로 출시됐다.
대우는 1986년 6월 27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신차발표회를 통해 르망을 국내에 선보였다. 본래 카데트 1.6 모델을 도입하려 했으나, 당시 배기량 1,500cc 이상부터 세금이 올라가는 국내 사정에 맞게 1.5리터로 개조한 엔진을 르망에 탑재했다.
처음 선보인 르망은 1,498cc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최고출력 88마력, 최대토크 12.9kg.m를 발휘했으며 170km/h의 최고속도를 자랑했다. 당시 대우가 밝힌 도심연비는 16.5km/L. 가격은 고급형 GLX 485만원, 최고급형 GSE 519만원이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3도어 해치백 모델인 ‘르망 레이서’가 출시됐으며 SE 435만원, GSE 514만원으로 세단에 비해 가격이 낮았다. 11월에는 최상위 모델인 ‘르망 살롱’이 579만원으로 출시됐다.
에어로다이내믹을 고려한 유선형 디자인의 르망은 국산차 스타일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그 이전의 국산차들은 박스 형태의 각진 차체가 대부분이었고, 에어로다이내믹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실내에는 디지털 계기판을 장착하는 등 신선한 아이템들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와 더불어 르망은 ‘월드카’라는 타이틀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수입차나 다름없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려 했다. 실제로 출시 초기에는 독일산 부품이 상당히 많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출시 전 이미 7천여 대의 사전 계약이 접수된 르망은 큰 호응을 얻으며 생산 첫 해인 1986년에 1만7천대가 판매됐고, 이듬해에는 11만8천대로 급증하는 등 1993년까지 매년 10만대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80년대 후반에는 르망과 포니 엑셀의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서로 자사 차량의 판매량이 더 높다고 주장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한 번은 대우가 르망 광고에 ‘싸구려 중형차보다 월드카 르망을 선택하라’는 문구를 내보내자, 이에 발끈한 현대가 시정을 요구한 사건도 있다. 하지만 대우는 그동안 현대 역시 광고를 통해 자사의 신경을 건드렸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후 1988년 3월에는 5도어 해치백 모델인 ‘르망 펜타파이브’가 라인업에 더해졌고, 1991년 2월에는 고성능 모델 ‘르망 이름셔’가 출시됐다. 이름셔는 당시 오펠의 차를 전문으로 개조하던 튜닝 브랜드. 르망 이름셔는 2.0리터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최고출력 120마력, 최대토크 19.0kg.m를 발휘했으며 185km/h의 최고속도를 자랑했다. 외관에는 원형 헤드램프와 전용 에어로파츠, 실내에는 스포츠 버킷 시트와 전용 스티어링 휠, 이퀄라이저가 적용된 오디오 등이 적용됐다. 가격은 990만원으로 상당한 고가였다.
르망 이름셔의 출시는 당시 튜닝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던 국내 실정을 고려했을 때 실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겐 생소한 컨셉트와 높은 가격으로 인해 180여대가 판매되는데 그치고 말았다. 대우는 이름셔에 적용된 외장 및 내장 패키지를 1.5 모델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이름셔 팩’을 선보이기도 했다.
1991년 10월에는 부분변경을 단행한 ‘뉴 르망’이 출시됐고, 1992년에는 해치백 모델을 기반으로 한 ‘르망 밴’도 선보였다. 1993년에는 세단 모델을 새롭게 단장하고 모든 라인업에 에스페로의 1.5리터 DOHC 엔진을 탑재한 최상위 모델 RTi를 추가했다.
출시 당시에는 가장 혁신적인 모델로 꼽히던 르망이었지만 세월의 흐름에는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1994년 5월에는 세단의 후속 모델 ‘씨에로’가, 이듬해 3월에는 해치백의 후속 모델 ‘넥시아’가 출시됐다. 하지만 기존의 르망도 꾸준히 병행 생산됐고, 1996년 11월 새로운 후속 모델 ‘라노스’가 등장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병행 생산되다가 1997년 2월, 결국 생산을 중단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르망은 1986년부터 1997년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총 103만4천567대가 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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