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프랑스의 대표 대중차 푸조. 척박한 국내 수입차 시장에 상륙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207패밀리를 통해 우리는 유럽산 소형 해치백의 저력을 가감 없이 확인할 수 있다. 207 삼총사의 국내 데뷔 1년이 갓 지난 시점에서 동기들 중 가장 기본이 되는 207GT의 시승을 통해 이 사자가 사는 법을 알아봤다.
경차급의 107과 준중형급의 307(308) 사이에 속하는 소형차. 206의 후속으로 2006년 봄 데뷔. 3도어와 5도어 해치백을 시작으로 CC, RC, SW, SW 아웃도어, SW RC로 가지치기. 만 2년이 안되어 생산 100만대 돌파. 2007년 유럽 베스트셀러 등극. 이것이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소형차 푸조 20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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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은 2007년 서울모터쇼를 통해 국내에 깜짝 데뷔했고, 동년 5월부터 GT, CC, RC의 동시 시판에 들어갔다. 여기에 2008년에는 SW가 추가로 소개됨으로써 사실상의 풀-라인업이 구축됐다. 선대인 206시리즈에 이어지는 이러한 전개는 소형차부분이 보잘것없는 국내 수입차 시장 상황에서는 몹시 특이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국내시장에서 정확하게 맞닥뜨리는 경쟁상대를 찾을 수 없어 자신만의 살길을 갖고 있는 모델들이기도 하다. 207CC는 뚜껑이 열리는 하드탑 컨버터블이고, 207RC는 175마력 터보 엔진과 수동변속기를 장비한 핫해치다. 207SW는 소형 왜건이다. 모두 별종들이다. 그런데, 207 GT는 좀 다르다. 207GT는 5도어 해치백이다. 그리고… 사양이 좀 좋단다. 그리고… 가격은 10만원 빠진 3천 만원이(었)다. …
207GT는 유럽의 베스트셀러라는 207 전 라인업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207은 여기 보는 이런 풀-옵션의 형태가 아닐 것이다. 디젤엔진과 수동변속기를 얹고 꼭 필요한 사양만을 갖춘 실용적인 모델이 그려진다. 가격도 우리에게 제시된 이 부담스러운 숫자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렇다면 국산 준대형차 값을 치뤄야 하는 국내시장에서 207GT는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을까?
적어도 겉보기에, 207GT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특장점이 약한 차다. ‘국산차보다도 나은 게 없어 보이는데 대체 왜 비싼 거야?’라는 성토에 새끼사자의 연약한 가슴은 만신창이가 됐을 법 하다. 그래서, 이번 시승은 일종의 측은지심으로 시작되었다. 새끼사자를 한번 구해보자. 국산차보다 나은 점이라도 좀 찾아보자… 1년을 벼른 시승에 임하는 자세는 그런 것이었다.
먼저, 207’GT’라는 이름부터 짚고 넘어가자. 국내에 소개되기 전까지, 207 GT라는 모델명은 영국시장에서 판매되는 207의 고성능 버전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206 때도 그랬지만 영국에서는 RC버전이 GT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같은 1.6 터보지만 최고출력이 150마력인 쪽은 GT, 175마력인 쪽은 GTi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럼 국내에 들어온 GT는 둘 중 어느 쪽인가 하면, 아무 쪽도 아니다. 구동계도, 하체도, 기본 207과 다르지 않은데, 한국시장을 위해 GT로 이름 지어진 것뿐이다. CC나 RC와 달리 207GT의 엉덩이에서는 ‘GT’라는 이름표를 찾아볼 수 없다. 자동차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GT’라는 두 글자가 상징하는 바를 생각한다면 심히 배신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미리 얘기하자면 GT라는 이름을 무시해야 이 차의 진가파악이 쉽다.
207 패밀리의 외관은 하나같이 존재감이 강하다. 같은 ‘펠린 룩’이지만 형들과 비교해도 ‘작다고 얕보지 마라’라는 식의 과격함이 느껴지는 얼굴들을 갖고 있다. 때로는 귀엽지만 때로는 무섭다. 눈과 입이 찢어진 얼굴형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나뉘지만 개성이 강하다는 점은 수입차 수요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7GT의 5도어 차체는 3도어보다 측면 윈도우 라인이 긴 탓에 더 늘씬해 보이면서도 안정적으로 보이는 장점이 있다. 실용성을 함께 챙기는 소비자에게는 5도어라는 것 자체도 강점이다.
네 개의 실린더 형상이 들어있는 헤드램프는 프로젝션 타입 하향등과 저속에서 작동하는 코너링램프 기능을 담고 있다. 가장 바깥쪽이 깜빡이이고 사이드미러 아래에도 리피터가 달려있다. 다른 푸조들처럼 리모컨으로 도어록을 해제하면 이 부분들에서 스피드 플래시가 연사 되듯이 오렌지 불빛이 작렬해 눈길을 끈다. 문이 잠긴 상태에서 다시 잠금 버튼을 누르면 역시 연사되는 이 깜빡이 불빛으로 쉽게 차를 찾을 수 있다. 사이드 미러 폴딩은 도어잠금여부에 따라 자동으로 이루어지며, 물론 윈도우 스위치의 버튼으로도 작동 가능하다.
207GT의 도어는 상당히 두터우며, 여닫을 때도 무게감이 있다. 흔히 작은 차를 탈 때 이 부분이 얇고 가벼워 ‘싸구려 차’ 또는 ‘허술한 차’라고 느끼게 되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다. 이삼중으로 처리된 웨더스트립은 외부 소음 및 오물 유입 방지에 효과적인 것으로, 역시 비교우위에 놓인다.
실내도 외관 못지않게 풍부한 볼륨감을 자랑한다. 사진상으로 둥글넓적해 보이는 스티어링휠마저도 실제로는 나름 볼륨업이다. 한마디로, 작은 차에서 공간을 쥐어짜기 위해 되도 않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내장 마감도 마찬가지. 옵션이긴 하지만 대시보드 전체를 가죽으로 덮을 수도 있는 것이 207이다. 분명 작은 고급차의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밑바탕을 갖추었다. 문제는 도어트림을 비롯한 각종 플라스틱 내장의 질감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 모듈화된 센터페시아의 구매욕-감퇴형 액정과 온도조절 스위치도 흥분을 가라앉히는 요소다. 이 부분을 308이 아닌 307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대시보드나 도어트림 상단처럼 직물 패턴 처리된 부분은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 센터페시아의 액센트 부분에는 SW의 은색 메탈 트림 대신 ‘카본 룩’ 트림을 썼는데, 실제로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검정 바탕에 세 꼭지 별을 무수히 찍어놓은 것이다. SW에서 봤던 빨간 테두리의 플로어 매트는 빠졌지만 페달에는 메탈장식이 붙어 스포티한 분위기를 낸다.
사실, 207들의 실내는 서로 거기서 거기이다. 사양에서 일부 차이가 있을 뿐이다. GT의 시트는 가죽과 직물의 혼합형으로, 암회색의 원톤에 흰색 스티칭을 적용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타본 SW 시승차의 오렌지색 가죽처럼 특별하다는 느낌은 덜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색상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그리고 하중이 실리는 부분이 미끄럽지 않아서 더 좋았다. 특히 시승차처럼 외장이 튀는 색상일 경우라면 실내는 차분한쪽이 어울리는 것 같다.
시트의 위치조절은 모두 수동으로 이루어지는데, 열선 기능은 빠졌다. 풀-옵션이라는 표현을 망설이게 되는 거의 유일한 부분이다. 시트는 시각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기능적으로는 뛰어나서, 타고 내리기에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코너링시 지지를 잘해주며 장거리 운전에도 편안하다. 스티어링 컬럼은 거리와 각도의 조절이 모두 가능한데, 필자의 경우에는 스티어링휠은 멀게, 풋레스트는 가깝게 느껴졌다. 보통 키의 여성이라면 오히려 적당하게 느껴지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참고로, 이런 류의 차들이 의외로 그렇듯이 의자를 끝까지 높여도 차의 앞 끝은 보이지 않는다.
수납공간은 소문난대로다. 도어포켓은 두터운 문짝만큼이나 폭이 넓고, 글로브 박스 위쪽의 작은 틈도 나름 요긴하다. 글로브박스는 덜렁덜렁 가볍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무게감 있게 작동하고, 든든하게 받쳐진다. 뚜껑안쪽은 선글라스, 동전, 필기구 등을 꽂을 수 있도록 오목조목하게 만들어져 있다. 컵 받침도 있는데, 엎지를까 무서워서 써보진 못했다. 정식 컵홀더는 센터콘솔의 뒷부분에 있고 1열 시트의 팔걸이에 가려지기 때문에 사용이 불편하다.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어디에 꽂을 것인가, 고민이 될법하다.
2열 시트는 앉은 자세가 편안하고 살짝 높이 앉았다는 느낌으로, 시야가 좋다. 하차 시에는 더 큰 차에서 내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머리 공간은 부족해서, 뒤통수가 천정에 쉽게 닿는다. 멋을 내기 위해 지붕과 뒷유리를 눕혔으니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지붕이 더 높고 뒤로 빠진 SW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앞유리에서 시작해 뒷좌석 머리 위까지 이어지는 유리지붕은 SW뿐 아니라 RC와 GT에도 있다. 겉 보기에는 리어스포일러 직전까지 이어지지만 실내에서 보면 가려지는 부분이 제법 많다. 그래도 뒷좌석 승객의 전방시야까지는 커버해주니 SW와 비교해도 딱히 아쉽지는 않다. 지붕유리는 적외선 열차단 처리가 되어있고 수동 햇빛가리개가 달려있다. 제일 뒤까지 개방했을 때는 손을 뻗기가 약간 먼 듯 하지만 용도를 생각하면 딱히 불편한 부분은 아니다. 대신 뒷좌석 공간에 별도의 조명이 없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뒷좌석 시트의 폴딩은 다소 의외였던 부분으로, ‘거의 안 쓰는 기능이니까’라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방석부분을 뽑아 앞으로 젖힌 후 등받이를 눕히도록 되어있는데, 기구장치가 허술하게 덜렁거리고 고정부분도 고스란히 노출된다. 헤드레스트는 일일이 뽑아야 하고 등받이는 완전히 눕혀지지 않으며, 방석 밑부분은 철판이 그대로 드러난다. 차의 성격상 207RC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GT에서는 실망스럽게 다가온다. 2열 시트를 뒤로 밀었다는 SW는 등받이만 움직이면 방석부분까지 함께 내려앉아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었다.
트렁크(해치 게이트)는 전동식 스위치로 잠금이 해제되며, 여닫을 때 조작감이 좋다. 내부공간은 시각적으로 준중형급에 육박하는 너비와 공간감을 갖고 있는데, 실제 적재용량은 기본이 310리터이고 시트 폴딩시 1,195리터로 늘어난다. 참고로, 현대 i30는 각각 340/1,250리터이다. 선반과 트렁크 바닥은 흡음 역할을 고려한 듯 두터운데, 반면에 뒷좌석 밑과 트렁크의 바닥철판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방진패드가 붙어있질 않다. 그러면서도 실주행시의 소음/진동/잡소리 면에서는 우수한 면을 보이고 있다.
기본 편의사양은 호화판이다. 크루즈 컨트롤, 오토 라이트, 오토 와이퍼, ECM룸미러, 듀얼 에어컨, 전좌석 원터치 업다운 윈도우, 타이어 공기압 감시장치, 그래픽화면을 포함한 후방주차센서… 차 값이 있는데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차 값이 몇 배 더 비싼 수입차도 이런 부분은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센터페시아 상단의 송풍구 통로에 자리잡은 순정 방향제 삽입 플러그는 차의 성격을 규정짓는 작지만 중요한 포인트로, 풍량조절레버를 이용해 사용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 떨어지면 서비스센터에서 구입이 가능한데, 가격은 2만원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전부터 눈길을 끌어온 대시보드 중앙의 (팝업식이 아닌) 고정식 내비게이션도 옵션으로 준비되어 있다. 터치스크린이 적용되어있지만 몸을 숙여야 닿을 만큼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조작은 불편하다. 운전 중 보기 좋은 위치에 배치한 대가다. 시승차에 장착된 제품(내비스타II, 루센맵)은 깔끔하고 화면 해상도가 높아 호감이 갔다. 4개의 좌석을 모니터링해 안전벨트 착용여부를 표시해주는 등 애프터마켓용 제품답지 않은 기능까지 뽐내지만 대기모드의 시계바탕화면이 푸조 마크 대신 생뚱 맞은 삼족오 마크로 되어있어 NG사인을 받았다.
207RC의 엔진이 미니 쿠퍼S의 것과 동일한 것처럼, 207GT의 엔진은 BMW의 미니 쿠퍼와 같다. 푸조(PSA 푸조 시트로엥)와 BMW가 공동 개발한 엔진들이기 때문이다. 최고출력 120마력, 최대토크 16.3kgm을 내는 1.6리터 가솔린 엔진은 국산 준중형급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소형차에 얹혔으니 응당 가뿐한 몸놀림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미니 쿠퍼는 가볍게 움직인다. 그런데 207GT는 그렇지 못하다. 207의 동력성능은 한마디로 평범하다. GT라는 이름 때문에 더 나은 뭔가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엔진이 같은데 왜 미니와 차이가 날까? 변속기와 무게, 태생이 달라서다.
국내에 들어오는 두 모델의 변속기를 보면 미니는 6단 스텝트로닉. 푸조는 4단 팁트로닉을 쓴다. 푸조 쪽이 효율이 떨어지고 판단과 반응도 늦다. 물론 중형차도 이제 겨우 4단을 벗어나려는 마당에 소형차의 4단 변속기를 탓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미니처럼 스티어링 휠에 변속패들까지 갖춘 것은 아니지만 207도 소형차로서는 황송한 스포츠모드와 수동모드를 갖고 있어 약간의 만회가 가능하다. 어쨌든,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밟아도 딴청을 피워버리는 엔진과 변속기는 답이 없다.
사실 207GT가 체구는 작아 보여도 몸무게는 준중형급이다. 차체 크기도 보기만큼 작지 않다. 206보다 각각 20cm와 10cm가 커진 길이와 휠베이스는 국산 소형과 준중형 해치백의 중간 정도이고 차폭과 높이는 일부 준중형을 넘어선다. 차는 튼실하고 장비도 많이 달았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산 1.6 준중형 이상의 성능은 보여주지 못한다. 기어가 2단에 물리는 정도의 속도에서는 발끝의 움직임에 피곤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시내주행에서라면 경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금새 한계가 드러난다. 변속기와 엔진은 엇박자를 만들고, 에어컨 틀어 놓으면 서서히 멈춰 설 때나 유턴할 때 엔진 진동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수동변속기의 클러치 페달 조작이 서투를 때를 연상시킨다.
본래 207에는 제법 다양한 엔진이 얹힌다. 1.4 가솔린이 두 가지, 1.6 가솔린 터보도 두 가지, 디젤도 세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수동변속기만을 쓴다. 자동변속기를 쓸 수 있는 엔진은 120마력 1.6가솔린 한가지뿐이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CC도, SW도 이 조합만을 쓰는 것이다. 셋 중에서는 그나마 몸무게가 덜 무거운 것이 GT이지만 실제 달리기실력에서는 CC나 SW보다 딱히 나을 것이 없어 보였다.
정지상태로부터 풀-가속을 해보면 50km/h 5,500rpm에서 2단, 90km/h 5,800rpm에서 3단, 145km/h 6,000rpm에서 4단으로 넘어간다. 제원상 0-100km/h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11.4초이지만 체감성능은 그에 못 미친다. 3단부터는 가속이 축 쳐져서 170km/h를 찍으려면 상당한 인내를 가져야 한다. 100km/h 정속 주행시의 엔진회전수는 4단에서 2,900rpm, 3단에서 4,000rpm 정도다.
다행히 승차감도 준중형급의 편안함을 확보하고 있다. 작은 차의 한계처럼 인식되는 촐랑거림이 없어 고속에서의 안정감이 두드러지고, 소음과 진동면에서도 고급스러운 감각을 준다. 차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NVH면에서 소형차 급에서는 신경 쓰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들까지 꼼꼼하게 챙긴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배기음 자체는 공회전시 조용하다가 가속페달의 온/오프 조작에 따라 제법 스포티해지기도 하는 편인데, ‘끄르르릉~’하는 것이 아기 사자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생각해보면 미니 쿠퍼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데도 괜히 그런 기분이다. 뚜렷한 배기음은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207GT의 경우에는 후자 쪽인 것 같다.
이제 단점은 다 나왔으니 나머지 장점을 꼽아보자. 배기구는 범퍼 안으로 숨기는 대신 밖으로 빼내 크롬 도금으로 마무리했다.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이런 디테일을 빼먹는 차들은 반성해야 한다. 207은 시동 걸 때 들리는 소리도 좋다. 이 급의 국산차는 이런 소리를 내지 못한다. 여기에서부터 격이 확 다르게 느껴진다. 변속기도 조작감 면에서는 월등하다. 감성적인 면에서 한참을 앞서간다는 얘기다. 207GT의 타깃에서 ‘잘 달리는 해치’를 원하는 젊은 남성층을 제외시키고 나면, 실제 수요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성능보다 오히려 이런 부분일 것이다.
사실 207의 주행성능은 편안하게 타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특히 안타까운 힘의 한계에 비해 하체가 몹시 매력적이다. 요철이 심한 노면을 만나면 그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해주는데, 그러면서도 움직임은 기민하다. 코너링에서는 일부러 심하게 방향을 틀어도 불안한 감 없이 잘도 추종한다. 정평이 나있는 서스펜션 세팅답다.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의 조작감이나 요철통과시의 피드백도 만족스럽다. 일부 소형차에서 느꼈던 저질스러운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브레이크는 저속에서 예민한 편이고 고속에서의 급제동시에는 아무래도 정지거리가 멀다. 어쨌든 후륜에도 디스크 브레이크를 채용하고 있으며 ABS는 물론 ESP까지 장비하고 있다. 에어백은 6개가 달려있고 유로 NCAP 충돌테스트에서는 별 다섯 개의 만점을 획득했다.
총 주행거리가 1,500km가 채 안되었던 시승차는 이번 시승에서 196km만을 주행했다. 이 구간 평균 연비는 8.7km/리터로, 공인연비인 12.4km/리터(CC, SW동일)에는 한참을 못 미쳤다. 다른 시승 때와 달리 주행거리가 짧았던 데다 주로 시내주행이 많았던 탓이다. 푸조는 두 가지 기록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시승 이전 주행거리까지 더한 연비도 얻을 수 있었다. 시승 이전에 남아있었던 기록은 496km 주행에 11.5km/리터. 시승 후 692km 지점에서의 평균연비는 10.5km/리터였다.
207GT는 시각적으로는 소형차가 맞지만 그 내용면에서는 준중형에 가깝다. 국산이었다면 사는 쪽이나 파는 쪽 모두 ‘작은 차에 뭐 이런 것까지’하며 빼놓았을 사양들도 충실히 갖추었다. 풀-옵션을 갖추고 작은 고급차의 성격으로 팔리는 것이 207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일 수는 있어도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는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이 정도 크기에 이러한 사양과 감성을 갖춘 5도어 해치백은 국산과 수입을 통틀어 아직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207GT는 새끼사자 운운하며 걱정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살 것 같다.
다만 그 가치가 가격을 합리화시켜줄 수 있는 정도인가를 평가하는 것은 실수요층의 몫이다. 합리적인 소비의 차원에서 구매하는 차급은 아니라고 해도, 지금보다는 좀더 저렴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가격이 올라 ‘2천 만원대 수입차’의 타이틀을 반납한 현재로서는 더욱 그렇다. (내부의 적인 207SW는 이제 50만원만 더 보태면 살 수 있다. 선택은 쉬운 듯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