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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요리를 향한 첫걸음 - 제네시스쿠페

\'303마력\' \'제로백 6.5초\' ‘브렘보 브레이크’ \'후륜구동 쿠페\' 이런 단어들은 지금껏 수입차, 그중에서도 성능 좋다는 스포티한 모델에서만 들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젠 어찌된 일인지 국산차를 이야기 할 때도 이런 솔깃한 단어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현대에서 만들어낸 제네시스 쿠페(이하 애칭인 ‘젠쿱’ 으로 통일) 때문인데, ‘국산차 최초의 고성능 후륜구동 스포츠쿠페’ 라고 정의할 수 있는 녀석이다. 커다란 입으로 미소인지 썩소인지 헷갈리는 웃음을 짓고 있는 젠쿱과의 만남을 정리해 보았다.


글, 편집 / 김정균 (메가오토 컨텐츠팀 기자)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의 공통적인 궁금증은 대략 이런 것들이겠다. 젠쿱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수치만큼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것인가? 현대의 이야기처럼 비슷한 장르의 수입차와 대등한 실력을 갖고 있을까? 자꾸만 ‘인생은 짧다’ 라며 광고하는데 정말 더 늙기 전에 한번 타볼만한 가치가 있는지? 기자도 몹시 궁금하긴 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고 있던 와중에 젠쿱의 시승 일정이 갑작스레 잡혔다.

마침내 시승 당일이 되자 은근히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군다나 2.0이 아닌 3.8모델이라니 제대로 된 젠쿱의 실체를 느껴보고 분석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후 양재동 현대 사옥으로 향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역시 아무리 봐도 미소가 아닌 썩소를 지으며 주차타워에 숨어 있던 검은색 380GT 모델이었다. P그레이드인 380GT 기본형에 자동변속기만 추가된 구성.

대부분의 잘나간다는 자동차 회사들은 저마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마니아들도 만족시킬 수 있는 고성능 모델을 갖고 있다. 대중적인 모델처럼 대량으로 생산해 큰 수익을 내기 위함은 아니지만, 그런 모델을 갖고 있음으로 해서 얻게 되는 브랜드 이미지 개선효과는 대중적인 모델의 판매량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라면으로 예를 들어보자. 김밥, 떡볶이 등을 파는 분식집의 평범한 라면은 그냥 라면일 뿐 비싸게 팔 수 없다. 하지만 최고급 요리도 함께 파는 식당의 라면이라면 정작 분식집 라면과 별 차이 없더라도 뭔가 달라 보이고 더 비싼 값에 팔수 있지 않겠는가. 현대는 지금까지 최고급 요리를 개발해 라면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조금 노력하려 했던 것이 현대 최초의 쿠페형 모델이라 할 수 있는 그 옛날 스쿠프였고, 그 후 티뷰론, 투스카니 등의 2도어 쿠페모델을 개발해 국내에선 마치 스포츠카인 것 처럼 광고해 왔다. 하지만 해외에선 그냥 평범한 쿠페 모델로 인식되는 게 당연. 성능이 평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터스포츠에 진출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경주차도 없는 현대로써는 이제 달라져야 할 때가 왔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근엔 최고급 요리의 필요성을 조금은 인식했는지, 드디어 평범하지 않은 요리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 제네시스 쿠페인데 세단인 제네시스와 이름과 플랫폼은 같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스포츠 쿠페, 젠쿱이라는 요리의 맛은 어떨지 음미해보자.


익스테리어
일단 기존 현대의 쿠페모델이었던 투스카니와 비교해 덩치가 훨씬 크다. 준대형 세단인 제네시스와 같은 플랫폼을 쓰기 때문이고 빵빵한 쿠페의 라인을 과감히 표현하려면 아무래도 이정도 크기는 되어야 하니까. 후륜구동이고 쿠페답게 앞뒤 오버행이 짧은 것이 지금까지 전륜구동 방식만 고집해왔던 현대차의 모습과는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

전면부의 디자인은 과감하다. 무난한 것만 좋아했던 현대가 큰 맘 먹고 만든 것 같은데, 개성 있는 이 앞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좋고 나쁘고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다. 기자의 눈에는 범퍼에 달린 커다란 입으로 정말 씩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헤드램프의 디자인은 날카로운 듯 과감하게 생겼는데 가운데 조그만 라디에이터 그릴은 소심하게 달려있다. 그릴을 반짝이는 크롬 소재로 만들어 소심함을 감추려 치장한건 어떤 이미지를 추구한 것일까.

측면은 누가 뭐래도 두 개의 뚜렷한 캐릭터 라인이 앞, 뒤에서 출발해 이어지지 않고 가운데 도어부분에서 어긋난 형태로 갈라지는 것이 포인트. 특히 리어램프부터 뻗어온 라인은 젠쿱의 모습이 날카롭고 강인해보이도록 표현하고 있다. 커다란 19인치 휠과 그 속에 브렘보 특유의 붉은색 캘리퍼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국산차로썬 정말 최초.

리어는 전면 헤드램프와 같은 디자인의 리어램프, 그리고 납작한 듀얼 머플러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복잡한 구석 없이 심플하고 트렁크 리드는 끝이 치켜 올라가 고속에서 스포일러의 역할을 해준다. 트렁크를 열면 입구는 좁아 짐을 실을 때 불편해 보이지만 안으로 깊숙이까지 꽤나 넓은 공간을 자랑한다.


인테리어
외관에선 크게 아쉬운 구석이 없었다. 썩소의 앞모습은 모르겠지만 출시 전 접했던 사진 속의 모습과 다르게 실물은 쿠페다운 역동적인 매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내는 좀 다르다. 직접 젠쿱을 만나기 전엔 현대가 최고급 세단이라 자랑하는 제네시스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인지라 고급스러운 쿠페의 느낌이 물씬 풍기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실내에서 럭셔리하거나 고급스러운 느낌은 없다. 스포티한 버킷시트에 앉아 전체적인 디자인만 쭉 살펴보면 개성은 있어 보이는데 각 부분의 디테일과 질감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스티어링 핸들도 가죽의 느낌이 아닌 우레탄 질감. 계기판은 벤츠 SLK의 것과 닮은 두 개의 원으로 스포티해 보이긴 하는데, 안에 푸르스름한 조명의 시인성이나 느낌은 그다지 뚜렷하거나 감각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센터페시아 상단의 디스플레이 정보 창은 가장 아쉬운 부분. 시인성이 좋지 않아 어두운 밤에 파란 조명이 들어오면 정보를 읽어내는 눈이 피곤해한다. 독특하게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센터페시아 또한 양 옆의 송풍구와 어우러져 디자인은 특이하지만 메탈그레인의 질감이나 버튼의 느낌 등은 평범하다. 그나마 스텝게이트식 기어변속 레버와 그 주변은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스마트키를 넣는 부분은 그 위치가 다른 차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긴 한데 키를 꼽으면 패널 뚜껑이 닫히지 않는다. 수납공간도 아닌 것이 옆에 시거잭만 있을 뿐이다.

뒷좌석에 추가 인원이 탑승할 경우 연령대는 초등학생 이하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커다란 젠쿱의 덩치에 비해 의외였는데 차체 사이즈가 더 작은 동급의 쿠페와 비교해도 뒷좌석의 거주성이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쿠페를 타면서 리어시트에 앉을 사람을 태운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세컨카가 아니라면 아이가 어리거나 미혼이어야 한다.


파워트레인 & 퍼포먼스
맨 처음 언급했듯이 성능 쪽으로 가면 그 수치가 솔깃하게 다가온다. 힘없는 2.7리터 엔진이 한계였던 투스카니가 보면 참으로 부러워 할만하다. 배기량 3,778cc 의 CVVT 6기통 DOHC엔진이 후륜구동 답게 세로배치 되어 엔진룸 속에 커버 없이 들어가 있다. 현대에서 람다 RS라 명칭 하는 이 엔진은 6,300rpm 에서 303마력, 4.700rpm 에서 36.8kgm의 힘을 발휘하며 6단 수동, 혹은 6단 자동변속기와 매칭 된다. 2.0터보 모델에 5단이 매칭 되는 것은 오너들에겐 아쉬운 부분.

하지만 이러한 수치들은 조금만 관심 갖고 마우스 클릭 한번 더하거나 카탈로그를 받아 제원표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지금부턴 젠쿱이라는 이름의 요리에서 성능부분의 맛이 어떤지에 대해 제대로 음미해 보겠다. 현대 측에서 발표한 0-100km 수치는 6.5초. 고속에선 시속 200km까지 어렵게 도달하는 게 아니라 가뿐히 넘긴다. 태어나면서부터 최소한 국산차 중엔 최고의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출신이 애매한 G2X의 초중반 가속성능은 제외하도록 하자)

오르간식 악셀레이터 페달은 답력이 매우 가벼워 무난한 시내주행이나 고속 크루징 시엔 편안하지만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긴다면 좀 더 무거운 쪽이 낫겠다. 이 가벼운 악셀페달은 살짝만 밟아도 차체가 톡 튕겨져 나가는 느낌. 아쉬운 출력을 이런 식으로 커버하는 낮은 배기량의 현대차와 출력 높은 젠쿱의 세팅이 비슷한 점은 의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초반 토크감이 우수한 점은 장점으로 다가온다.

정지 상태에서 풀악셀을 하면 힘이 넘치는 듯 뒷바퀴가 슬립을 일으키며 튕겨져 나가는데 체감성능은 수치보다 뛰어나게 느껴진다. 독일차 내지 그와 닮은 인피니티 모델에서 느껴지는 초반 미세하게 텀을 두고 치고나가는 맛이 아니라 일단 튕겨져 나간 후에 가속을 덧붙이는 스타일이다. 이는 다른 모델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현대차, 아니 젠쿱만의 스타일인데 이런 느낌이 좋다 나쁘다 결론 내릴 순 없다. 마치 젠쿱의 앞모습 디자인처럼 운전자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악셀페달을 끝까지 밟은 그 상태로 올라가는 속도계의 바늘을 주시했다. 속된 말로 배기량이 깡패라고 하는 것처럼 거침없이 속도가 상승해 중간에 힘든 기색 없이 200km에 도달한다. 그 후에도 꾸준한 가속이 붙어 도로 상황이 허락하는 한 달려본 최고속도는 230km부근. 앞이 뻥 뚫린 직선이 계속 이어진다면 좀 더 힘을 낼 수 있겠다 -


- 라고만 말하려 했으나 문제는 도로 상황만이 아니었다. 젠쿱은 높은 배기량과 6단변속기 답게 출력 부분에선 아쉬움을 느끼기 힘들지만 문제는 하체의 불안한 느낌이다. 고속에서도 그렇지만 정속 주행 중 추월을 위해 킥다운을 하고 빠른 차선변경을 시도하면 타이어가 살짝 슬립을 일으키며 차체가 휘청거려 불안한 느낌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출력 대비 하체가 받쳐주지 못한다는 것. 물론 이정도로 충분히 훌륭하다며 만족 할 수 있겠으나, 워낙 기본적인 성능이 높은 영역이기 때문에 더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이는 코너에서 더 절실히 느껴지는 부분으로, 폭이 넓은 19인치 휠에다 성능을 과시하기 위해 기본 타이어로 썸머 타입의 브리지스톤 포텐자를 장착해 놓은 것과는 조화가 맞지 않는 아이러니한 감각이다. 전륜구동 대비 후륜구동 차의 우수한 무게배분, 스펙 높은 휠, 타이어, 그리고 그 유명한 브렘보의 브레이크 시스템까지. 이런 장점들을 갖춰 놓았으면서도 탄탄하지 못한 하체 때문에 그 장점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스티어링 핸들은 저속에선 편안한 세단처럼 가벼워 다루기 쉽지만 고속으로 가면서 제대로 무거워지지 않는 점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코너링 자체는 수준급이지만 스티어링 핸들이 매우 가벼워 고속에선 조작에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한다.

하체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듣기 좋은 소리는 바로 엔진음과 배기음. 알피엠이 상승해도 기어단수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수동모드를 오르내리며 달려 나가면 기어 단수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음색을 내뿜는 엔진음과 뒤에서 적당히 그르렁 거리는 배기음은 마치 스포츠카의 그것처럼 운전자를 설레게 해 준다.


에필로그
국산차가 이정도 스타일과 성능을 보여준다는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현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요리의 맛을 음미해보고 나니 ‘인생은 짧다’ 라는 젠쿱의 광고 카피처럼 스피드와 스타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더 나이 들기 전에 이런 고성능 쿠페 한번 타봐야 되지 않겠냐는 질문엔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다만 워낙 기대가 크고 높은 영역의 성능을 갖고 있는 모델인지라 몇 가지 아쉬웠던 부분들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밟아대는 차가 아니라 서서히 이 녀석에게 몸을 맞추며 조심스럽게 친해져야지 그렇지 않다면 높은 출력과 아쉬운 하체, 후륜구동의 특성 등으로 특히나 겨울철엔 정말 인생이 짧아질 수도 있으니 이런 스타일의 모델을 처음 접하는 오너라면 인지해야 할 부분이다.

결론을 지어보자면, 현 시점에서 가격적인 측면을 감안했을 때 젠쿱의 경쟁력은 동급 수입차 대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첫 술에 배부를 자 누가 있겠는가. 이제 첫 시도에 이 정도 수준의 맛이라면, 앞으로 좀 더 가다듬고 숙성시켜 현대가 만들어낼 최고급 요리의 맛은 어떨지 더욱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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