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원도 인제 서킷을 연달아 두 번 방문했다. 재규어 F-타입과 고성능 R 라인업을 체험하기 위한 재규어 드라이빙 아카데미, 그리고 BMW의 고성능 M 라인업이 총 출동한 BMW M 트랙데이가 열렸기 때문. 두 행사 모두 한정된 시간 내에 여러 차종을 나눠 타며 페이스카를 따라 주행하는 맛보기 정도였기 때문에 평소 시승과 달리 하나의 차종을 자세히 살펴볼만한 시간과 여건은 부족했다. 따라서 이번 시승기에서는 두 브랜드를 대표하는 고성능 모델들의 주행감각을 비교하며 각기 다른 성격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2인승 로드스터인 F-타입과 2도어 쿠페인 M3는 직접적인 경쟁모델이 아니지만, 설계단계부터 달리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근본적인 성격은 굉장히 닮아있기 때문에 같은 서킷에서의 주행을 통해 비교할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아울러 각자의 브랜드에서 운전재미가 가장 뛰어난 대표선수라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먼저 전설의 스포츠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탄생시킨 재규어의 새로운 아이콘 F-타입. 후광이 비출 정도로 돋보이는 외모에 가려진 주행실력은 F-타입의 또 다른 진가라 할 수 있다. 일단 재규어의 다른 차종들과 달리 시트에 앉자마자 엄습해오는 타이트한 스포츠카의 분위기부터 범상치 않고, 잠들어 있는 맹수를 깨워 가속페달로 조련을 시작하면 강도를 높여갈수록 포효하는 울부짖음이 귓가를 제대로 자극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다채롭게 뿜어져 나오는 배기 사운드를 즐기며 서킷을 질주하는데, 부드러움을 예상했던 온 몸의 세포들이 의외의 탄탄함에 놀란 듯 긴장해버린다. 과장 조금 보태면 슈퍼카의 감각을 옮겨놓은 것처럼 하드코어한 주행감성을 발휘하고, 연달아 굽이치는 코너에서 기대 이상의 접지력과 예리한 핸들링으로 당차게 돌아나가는 실력은 F-타입을 더욱 사랑스러운 존재로 각인시킨다. 결국 디자인과 성능 모두에서 재규어 특유의 감성과 의외의 완성도까지 모두 갖춘 매력적인 스포츠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도로 위의 영원한 로망 중 하나인 BMW M 디비전에서 마지막 자연흡기 엔진을 품은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은 e92 M3 쿠페다. 국내 정식 출시된 지도 어느덧 5년. 곧 등장할 f82 M4 쿠페에게 왕자의 자리를 내줄 운명에 처했지만, 태생적으로 가진 능력이 워낙 출중해 현 시점에서도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실력으로 최고의 운전재미를 선사한다.
M5와 M6 등 최신의 M 모델들 사이에 당당하게 서있는 M3의 존재는 마치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치고 은퇴경기에 임한 스포츠 스타처럼 비장해 보인다. 서킷을 주행하자 은퇴시기를 몇 년은 더 늦춰도 상관없을 것 같은 정상급의 실력으로 모든 코스를 완벽하게 공략해나가는 M3. 고회전 엔진의 매끄러운 회전질감, 더없이 빠른 더블클러치 변속기, 낮은 무게중심과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하는 섀시, 유연하면서도 탄탄한 하체, 날카롭고 치밀한 스티어링 감각.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발휘되는 M3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혼을 불사르는 듯한 감동을 안겨준다.
재규어 XFR VS BMW M5
슈퍼세단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XFR과 M5는 양사의 고성능 모델 중 일상에서 타기에 가장 편하다는 장점을 가진 반면 서킷에서 가장 재미없다는 단점도 드러낸다. 물론 재미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성인 네 명이 편안하게 탑승해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차라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
재규어 XFR은 500마력 클럽에 가입되어 있지만 M5와 비교하면 출력과 가속성능에서 약간 뒤쳐진다. 새롭게 등장한 XFR-S도 과격해진 외모와 달리 수치상으로 M5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하지만 재규어의 풍부한 감성은 XFR을 수치 이상의 괴물로 느껴지게 한다. 슈퍼차저 특유의 엔진음과 은은하게 밀려드는 적절한 톤의 배기음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휘청거리다가도 결국엔 자세를 잡아주는 하체가 서킷에서도 끊임없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M5는 경험하기 전에 예상되는 기대치만큼 하드코어하지 않다. 강력한 트윈터보 엔진과 컴퓨터 같은 변속기, 0-100km/h 가속 4.3초라는 무시무시한 가속력을 자랑하지만 세단의 본분을 잃지 않고 편안함의 여지를 남겨둔 영리함을 지녔다. 모든 부분에서 XFR보다 첨단의 냄새가 짙게 풍기지만 상대적으로 심금을 울리는 감성은 부족한 편이다. 너무 잘나도 조금은 재수 없게 느껴지는 그런 심리와 비슷한 맥락이랄까.
재규어 XKR VS BMW M6
XKR과 M6는 두 브랜드의 서로 다른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XKR은 재규어 라인업에서 가장 감성이 풍부하며 M6는 BMW 라인업에서 가장 철두철미하다. 물론 재규어도 충분히 철두철미하고 BMW도 감성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럽지만, 영국차와 독일차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차별화된 감각은 분명히 드러난다.
XKR은 굉장히 빠르지만 굳이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아니 그저 가만 서있기만 해도 보는 이의 마음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도로에서 문득 마주친다면 분명 M6보다 한 번 더 쳐다보게 될 것이다. 클래식함이 살아있는 외모에서부터 약간의 허술함을 감성으로 승화시키는 주행감각까지. XKR은 남다른 멋을 아는 남자를 위한 색다른 선물이다. 서킷에서도 더 빠르게 달리고 싶은 욕심보단 느낌을 즐기게 되는 타입이라 할 수 있다.
반면 M6는 한계치를 가늠하기 힘든 타이트한 안정감으로 폭발적인 성능을 묵직하게 뿜어내는 타입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완벽한 비례의 외관과 꽉 짜인 스포티한 실내도 왠지 모르게 냉정하고 차가운 느낌. 어려운 서킷을 집중해서 달린 결과 100점 만점에 98점의 성적표를 받는다 해도 만점이 아니라서 혼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차가 모든 걸 알아서 해주니 만점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자동차라는 기계를 이 정도까지 완성도 있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세삼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좋고 나쁨이 아닌 성격의 차이
최소한 1억을 호가하는 고성능 모델을 구입하면서 단순 수치비교만으로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에 비교 경험한 재규어와 BMW의 쟁쟁한 녀석들도 마찬가지. 특히 뚜렷한 성격 차이를 드러내는 R과 M의 경우 달리면서 느껴지는 주행감각과 감성이 선택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할 것이다.
아름다운 고성능을 표방하는 재규어, 다이내믹한 드라이빙의 진가를 보여주는 BMW. 스타일과 성격은 다르지만 양쪽 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서킷에서의 제한적인 상황과 부족한 시간 때문에 자세히 탐구하지 못해 아쉬웠던 재규어 F-타입과 R, BMW M의 진면목에 대해서는 차후 별도의 시승과 촬영을 통해 다시금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