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가 탄생시킨 새로운 스포츠 세단 XE. 이 핫한 신차는 동급 최고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BMW 3시리즈의 아성에 도전한다. 아울러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아우디 A4, 렉서스 IS, 인피니티 Q50, 볼보 S60 등의 만만찮은 경쟁자들과도 치열한 승부를 펼쳐나갈 것이다.
야심찬 출사표를 던진 XE를 타고 강릉 일대의 고속도로와 굽이진 산길을 아우르며 약 200km에 달하는 코스를 달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XE는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으로서 트렌디한 ‘요즘 차’의 필요충분조건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재규어 고유의 철학과 풍부한 감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먼저 재규어 최초로 자체 제작한 인제니움 엔진을 품은 20d 모델에 올랐다. 2.0리터 4기통 디젤 터보차저 유닛의 출력과 회전질감, 정숙성, 효율 등은 현 시점에서 동급 최고라 일컬어지는 쟁쟁한 엔진들과 견줘도 전혀 부족함 없는 수준.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kg.m, 0-100km/h 가속시간 7.8초, 최고속도 228km/h, 복합연비 14.5km/L 등의 수치를 갖고 있다.
ZF 8단 자동변속기의 조율을 거쳐 후륜으로 전달되는 힘은 모든 속도 영역에서 충분한 가속을 이끌어낸다. 무식하게 힘만 앞세워 허겁지겁 뛰쳐나가는 경박한 반응이 아니라 반의 반 템포 정도 살짝 여유롭게 치고나가면서 꾸준히 밀어주는 타입.
같은 변속기를 사용하는 3시리즈의 경우 스포트 모드를 사용하면 변속 자체는 더 빠르고 타이트하지만 변속 충격이 존재하는 반면, XE의 변속은 다이내믹 모드에서도 그보단 약간 느긋한데 충격은 거의 없다. BMW와 재규어의 성격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가속페달을 깊게 짓누르면 다소 생소한 엔진음이 들려온다. 처음 듣는 음색인데 듣기 싫거나 거슬리진 않는다. 마치 6기통 디젤 엔진의 묵직한 저음과도 흡사하기 때문에 감성적인 측면에서 득이 될 만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그대로 거침없이 속도를 높여본다. 고속주행에서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탁월한 안정감을 선사하는 XE. 거짓말 전혀 보태지 않고 상위 세그먼트의 안정감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특히 늘씬한 차체와 공기역학적인 설계에서 비롯된 재규어 모델 최저의 공기저항계수 덕분인지 맞바람을 안정적으로 수월하게 가르는 솜씨가 몸으로 체감될 정도다. 고속 코너링이나 급차선 변경에서도 태생적으로 뛰어난 하체와 더불어 일체의 불안한 거동을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3시리즈를 넘어 동급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량 알루미늄 소재가 적용된 동급 유일의 전륜 더블위시본, 후륜 인테그럴 링크 서스펜션은 XE를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다. 3시리즈의 맥퍼슨 스트럿, 멀티링크 방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구조적인 한계는 분명 존재하는 법. XE는 우월한 서스펜션 구조를 바탕으로 누구나 만족할 수밖에 없는 유연하면서도 탄탄한 세팅을 가미해 이상적인 승차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실현했다. 과속방지턱 하나를 넘어도 굉장히 세련된 거동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훌륭한 하체는 코너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하기 마련. 노면이 고르지 못하거나 미끄러운 상황에서도 앞뒤가 따로 놀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물 흐르듯 유연하게 돌아나가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동급 유일의 토크 벡터링 기능도 한 몫 단단히 하지만, 동급 최초의 알루미늄 인텐시브 바디 구조에서 비롯된 우수한 강성과 50:50의 이상적인 무게배분이 XE의 탁월한 운동성능을 근본적으로 뒷받침한다.
코너를 돌아나가는 실력 자체는 나무랄 데 없으나 전동식 스티어링의 감각은 약간 아쉽다. 역동적인 스포츠 세단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예리함은 아니다. 쫄깃하고 타이트한 맛이 살짝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 양손에 전달되는 노면정보도 조금만 더 명확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일상적인 주행에서 대다수의 운전자들은 너무 예민한 것보다 이러한 감각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브레이크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무난한 제동력을 발휘한다. 밸런스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급제동에서도 기분 나쁜 출렁거림이 적다. 다만 브레이크 페달의 답력이 초반에 다소 무른 편이라 스포츠 주행을 위한 세밀한 조작에는 적응이 필요하다. 이 부분 역시 스티어링 감각과 마찬가지로 재규어스러운 성격이 반영된 결과다. 너무 각박하게 몰아치기보단 여유를 갖고 감성을 즐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다음은 2.0리터 가솔린 터보 모델과 함께한 주행. 같은 엔진으로 출력을 더 높인 25t 모델도 존재하지만 국내에 먼저 출시된 것은 200마력 버전의 20t 모델이다. 가솔린 엔진 특유의 주행감성과 정숙성이 돋보이며, 그 외의 부분들은 디젤 모델과 거의 동일한 감각이다. 판매의 주력은 분명 디젤 모델이 되겠지만 재규어의 감성에는 가솔린 엔진이 더 어울린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다. 차후 3.0리터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을 장착한 3.0 S 모델의 시승을 통해 스포츠 세단 XE의 또 다른 실력을 가늠해볼 예정이다.
시승을 마치고 내외관을 살펴볼 차례. 수려한 외관 디자인은 XE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닐 수 없다. 낮고 넓은 안정적인 자세를 바탕으로 역동적인 스포츠 세단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패밀리룩이 적용된 전면부는 다른 재규어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매혹적인 카리스마를 자아내며, A필러와 C필러의 각도가 남다른 쿠페 스타일의 측면에는 얇지만 또렷한 숄더라인이 가미되어 탄탄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후면부는 깔끔하고 단아한 느낌. 리어램프는 LED 라인이 심심함을 달래주고, 트렁크 리드에 달린 얄쌍한 리어스포일러는 은근히 매력적이다. 상대적으로 볼품없어 보이는 머플러 팁은 옥에 티.
실내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곳곳에 사용된 소재의 질감이 우수하고, 조립품질 또한 흠잡을 만한 부분을 찾아내기 힘들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재규어다운 감성이 잘 드러나는 멋스런 모습. XJ를 빼닮은 대시보드와 스포티한 스티어링 휠, 기어변속 다이얼 등은 사소하지만 구매욕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반면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디자인은 세련된 느낌이 덜하다. 주행모드 조작버튼이 너무 작고 불편한 위치에 있다는 것도 아쉬운 점. 스포츠 세단이라면 주행 중에도 빠르고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해야 한다.
공간을 창출해내는 능력은 재규어의 특기가 아닌 만큼, 차체 크기 대비 실내 공간이 여유로운 편은 아니다. 평균적인 체격의 성인 남성 기준으로 운전석과 조수석에선 넓은 센터페시아와 그대로 이어진 높은 센터 터널 때문에 그쪽 무릎이 닿을 수 있고, 뒷좌석 머리와 무릎 공간도 충분하진 않다. 하지만 동급의 어떤 경쟁모델도 공간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넉넉하진 못하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미세한 차이를 몸으로 직접 느껴보고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에필로그 유려한 디자인, 우수한 기술력, 출중한 성능, 고급스러움과 풍부한 감성. 이 모든 걸 다 가진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 XE는 기대 이상의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며 시작부터 쟁쟁한 경쟁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특히 3시리즈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 독일차의 강점을 영국차에 성공적으로 이식한 영민함이 돋보인다. 직간접적인 비교는 아래의 장단점을 통해 대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