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방법이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 ‘Sustainable Claremont(이하 SC)’의 대표가 된 토플 선생님은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나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설파했다.
SC는 지난 2008년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시의 ‘지속가능한 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설립됐다.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활동하는 SC는 시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지역 사회와 주민을 위해 봉사한다. 주로 활동하는 분야는 환경이다. 매년 1,000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고 지구의 날을 기념해 행사를 개최하며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성을 전파하고 행동을 촉구한다.
이러한 친환경 운동 단체의 대표 스튜어트 우드는 환경 문제를 과학이 아닌 정치적으로 접근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눌 당시에는 갸우뚱 했지만 최근 배출가스 5등급 차량에 부과되는 과태료 논란을 보니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12월 1일부터 서울시는 사대문 안 녹색교통지역으로 진입하는 배출가스 5등급 차량에 대한 단속을 시작했다. 지속가능 교통물류 발전법 시행령 제30조에 따라 서울시는 자동차 통행량과 온실가스 배출량, 교통 혼잡 정도를 고려해 지정한 구역에서 노후 경유차 운행을 제한한다.
공해 저감장치 장착 차량, 긴급, 장애, 국가유공자 차량을 제외한 약 191만여 대의 노후 경유차가 제한 구역으로 지정된 중구와 종로구 등 서울시 전체 면적의 약 3%에 해당하는 구역으로 진입하면 과태료 25만원이 부과된다.
단속 첫날 과태료와 관련해 서울시 다산콜센터와 담당 부서에는 104건의 불만 신고가 접수됐다. 25만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과태료에 대한 항의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회에서 계류 중인 미세먼지특별법이 통과되면 과태료가 10만원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언급하며 국회의 협조를 강조했지만, 과태료 자체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자동차10년타기 시민연합 임기상 대표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자동차의 상태가 아닌 2006년 이전 차량을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기준은 문제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매년 환경개선부담금을 지불하고 자동차 검사를 시행해온 노후 경유차 차주들은 이중규제라며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글을 올린 한 청원인은 저감장치를 장착하더라도 연소 후 발생하는 찌꺼기를 포집하고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소형차 기준 500만원에 상응하는 특정 저감장치만 허용하는 정책의 빈틈을 지적하며, 대부분 중국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책임을 일부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유연하지 못한 정책에 대한 지적은 나름 일리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현 정부의 정책이 장기적인 대책이라기보다는 매우 일시적이고 근시안적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은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공동 연구결과를 토대로 ‘동북아 장거리이동 대기오염물질 국제공동연구’ 요약 보고서를 발간했다. 아울러 2017년 기준 중국 배출원이 서울, 대전, 부산 3개 도시의 미세먼지에 끼친 영향은 32%이며 국내 자체 요인은 51%로 분석됐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환경부와 미국 항공우주국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미세먼지 발생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산업(38%)이었다. 그 뒤를 이어 수송(28%)과 생활(19%)순이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에 대해서도 불신이 팽배하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에도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2020년 환경부의 미세먼지 예산안 중 산업이 아닌 수송 분야에 70% 이상의 예산이 책정된 것이다.
수송 분야 예산 중 상당부분은 친환경차 구매 보조금이다. 전기차나 수소차 구매를 촉진해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에 의문이 간다. 지난 3월 SBS는 발전소에서 전기차 충전용 전기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미세먼지와 전기차의 브레이크 패드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합이 휘발유 차량의 93%에 달한다는 에너지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
과거 미국 LA는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스모그로 재앙을 겪은 적이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자동차 배기가스가 오존과 햇빛 사이에 광화학 반응을 일으켜 스모그가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LA 시민들은 방독면을 쓰고 외출할 정도였다.
일명 LA형 스모그를 계기로 캘리포니아주는 연방정부가 대기관리법을 제정하기에 앞서 자동차 오염방지법을 통해 대기질 개선에 앞장서왔다. 지금도 캘리포니아는 연방정부가 정한 기준보다 높은 연비 기준을 고수하며 연방정부와의 소송도 불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관성 있는 정책 유지로 캘리포니아는 친환경차 인프라 구축, 전기차 공유 서비스, 대중교통 확충 등 환경 문제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저해하는 요소들을 없애나가고 있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혼란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정치의 본질이다. 미세먼지의 진짜 주범은 건들지 못하면서 애꿎은 시민들에게 마땅한 대책도 없이 피해를 무작정 감수하라고 하는 정부의 일시적이고 근시안적인 대책은 질서가 아닌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서울시 다산콜센터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각자의 울분을 토로하는 시민들은 억울함보다 답답함이 더 컸을 것이다. 시민들이 수긍하고 납득할 만한 정책이 마련된다면, 논란과 항의가 아닌 자발적 참여와 실천으로 답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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