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저기 샴페인 하우스 가봤는데!” 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은 기쁜 표정으로 ‘Taittinger’라고 적힌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읽어야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나에게 그녀는 ‘떼땅져’라는 샴페인에 대해 설명해줬다.
기쁜 자리에 늘 함께하는 샴페인. 경쾌한 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기포, 섬세한 향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떼땅져 소유주의 아들인 클로비스 떼땅져는 마시면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샴페인으로 떼땅져를 묘사하기도 했다. 술에 취한 상태로 취재와 운전을 할 수 없어 시음은 아쉽게도 다음으로 미뤘지만,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 스타 레벨레이션’ 현장에서 마치 샴페인이라도 마신 듯 활기찬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미쉐린 가이드는 지난 2016년 28번째 도시로 선정한 서울을 현대적 미식과 전통적 미식이 공존하며 아시아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고 개성 있는 미식문화를 선보이는 곳으로 표현했다.
그웬달 뿔레넥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는 “미쉐린의 평가원들은 스타 레스토랑에 선정될 수 있는 보석 같은 맛의 레스토랑들을 찾아 서울의 거리 구석구석을 다니는데 해가 갈수록 서울의 레스토랑들이 제공하는 퀄리티 높은 요리들을 발견하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있다”며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적인 미식 경험을 고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레스토랑 같은 새로운 요리 스타일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얻는다”고 말했다.
이번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 셀렉션은 건강한 음식과 내추럴 와인 등 지속가능한 미식을 위한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한편, 4곳이 새롭게 추가된 60개의 빕 구르망 레스토랑들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에 뛰어난 메뉴들을 제공하는 이른바 가성비 좋은 레스토랑도 함께 공개했다.
3스타 레스토랑 2곳, 2스타 레스토랑 7곳, 1스타 레스토랑 22곳, 빕 구르망 레스토랑 60곳, 더 플레이트 레스토랑 88곳 등 총 179개의 레스토랑이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 셀렉션에 포함됐다. 새롭게 추가된 레스토랑은 총 25곳이다.
1926년 도입돼 훌륭한 레스토랑에게 별점을 부여하는 미쉐린 스타 시스템, 1957년 새로운 카테고리로 추가된 빕 그루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뜻한다. 2020년 에디션부터는 합리적인 가격이 1인 기준 4만 5000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플레이트의 경우 빕 그루망에 선정되지 않았지만 좋은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곳을 지칭한다.
1년에 약 250회의 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160박을 보내는 미쉐린 평가원들은 5가지 원칙 아래 평가를 진행한다. 세계 주요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전문 경력을 쌓은 평가원들은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변함없는 일관성을 고려해 선정한다.
훌륭한 요리를 선보이며 멀리 찾아갈 만하고, 더 나아가 특별히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식당을 소개하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미쉐린 가이드의 시작은 빨간 안내 책자였다.
1899년 프랑스 끌레르몽 페랑에서 앙드레와 에두아르 미쉐린 형제는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미쉐린 타이어 회사를 설립했다. 그 당시 프랑스에는 열악한 도로 환경과 더불어 자동차가 약 3천여대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미쉐린 형제는 더 많은 타이어 소비를 위해 운전을 장려할 방법을 고민했다.
1년 뒤 발간된 무료 가이드북은 그 고민의 결과이자 최초의 미쉐린 가이드다. 타이어 교체 방법, 주유소 위치, 식당, 숙박시설에 대한 정보가 담긴 가이드북은 무료로 배포됐다. 우연히 자신의 가이드북이 작업대 받침대로 사용되는 것을 목격한 앙드레 미쉐린은 7프랑의 가격을 책정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가이드북에 유료 광고를 싣지 않겠다는 내용과 함께.
그로부터 1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빨간 표지의 소책자는 단순한 안내서를 넘어 세계를 아우르는 파인 다이닝의 품질보증 마크로 통한다. 미쉐린 가이드는 현재 31개국에서 발간되며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과 호텔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명성에 때문일까. 지난 2003년 천재 요리사로 불리던 베르나르 루아조 셰프는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 ‘라 코트 도르’가 미쉐린 3스타에서 2스타로 강등될 것을 염려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6년에는 미쉐린 3스타 식당 ‘오텔 드 빌’을 운영하던 브누아 비올리에 셰프도 미쉐린 가이드 발표를 앞두고 숨진 채 발견됐다. 20년 경력 유명 셰프의 자살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생전에 완벽주의자적인 성격과 함께 등급에 대한 강박이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미쉐린 가이드의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명확한 기준도 없거니와 선정 과정에 이권과 인맥이 개입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다는 이유였다. 이에 미쉐린 측은 독립성이라는 핵심가치와 관련해서 어떠한 타협도 용납되지 않으며 유료 컨설팅이나 선정의 대가로 금품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지난 120년 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미쉐린의 원칙과 시스템을 준수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영방송인 KBS는 ‘미쉐린 별과 돈 그리고 브로커’라는 프로그램 방영을 통해 일명 미쉐린 브로커에 대한 실체를 폭로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전 세계 100여개 식당만 받을 수 있다는 미쉐린 스타 평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고, 세계 음식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한다는 미션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를 모두 아우르는 문화까지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낱 음식에 대한 호들갑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아무쪼록 시작은 타이어 판매 촉진을 위한 가이드북이었지만,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곳’을 소개하며 함께 나누고자 했던 미쉐린 형제의 고귀한 초심이 지켜지길 바란다.
사진 / Sophia Choi, Michelin 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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