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태양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재작년 여름, 강렬한 레드 컬러의 812 슈퍼패스트를 처음 마주했었다. 당시 국내 출시 행사에서 폭발적인 배기음과 함께 자욱한 연기를 일으키며 드리프트를 선사했던 812 슈퍼패스트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페라리 12기통 모델의 계보를 이은 812 슈퍼패스트는 F12 베를리네타의 후속작으로, 슈퍼카의 성능을 발휘하는 플래그십 GT 모델이다. 매끄러운 곡선과 유려한 라인,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한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812 슈퍼패스트를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 일대에서 시승했다.

FR 방식의 후륜구동 파워트레인은 6.5리터 V12 자연흡기 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의 조합으로 최고출력 800마력, 최대토크 73.3kg.m의 괴력을 발휘한다. 자연흡기 엔진으로 리터당 123마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수치를 자랑하며, 0-100km/h 가속 시간은 2.9초, 최고속도는 340km/h에 달한다.

이제 800마력을 온몸으로 체감할 차례. 야수의 품으로 들어가 자세를 잡으면서 두근대는 심장을 달래본다. 기본 주행 모드인 ‘스포츠’도 812 슈퍼패스트 고유의 주행 감성을 충분히 이끌어내며 ‘레이스’ 모드에서는 모든 반응이 한층 더 날카로워진다. 가속 페달을 짓누르자 거친 포효가 온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동시에 폭발적인 질주가 시작된다.

연속적으로 마주한 코너링 구간에서 후륜에 집중되는 고출력에 걱정이 앞선 것도 잠시, 거듭된 변속 과정 속에 뒷바퀴가 미끄러지나 싶더니 재빠르게 노면을 움켜쥐는 거동이 놀랍다. 급격한 조작에도 흔들림 없는 스티어링 감각과 탁월한 운동성능의 앙상블이 빛나는 순간이다.

코너 곳곳에 812 슈퍼패스트의 발자취를 남긴 후 다다른 직선구간에서는 엔진 회전수를 적극적으로 높여도 능수능란하게 바람을 다스리며 안정된 자세를 유지한다. 특히, 직선구간 끝 무렵에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는 브레이크 시스템은 가속만큼이나 짜릿한 제동력으로 주행의 묘미를 배가시킨다.

아쉽지만 서킷에서의 질주를 마무리하며 공도로 나섰다. 야수가 신사로 변신하는 마법에 걸린 듯 반전 매력을 선사하는 812 슈퍼패스트. 서킷에서는 단단한 감각이 극대화된 느낌이라면, 일반도로에서는 능수능란한 유연함이 돋보인다.

예상을 넘어서는 유연함을 바탕으로 장거리 주행에 부합하는 GT카 본연의 편안함을 제공하며, 그렇게 달리다보면 데일리카로 손색없는 슈퍼 세단을 연상케 한다. 과도하게 높은 과속방지턱이나 경사가 급한 진입로를 마주해도 서스펜션을 높여 차고를 조절해 안전한 각도를 확보할 수 있다.

영원히 자연흡기 엔진만 고집할 줄 알았던 페라리도 언제부턴가 터보 엔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일부 모델에는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아직은 즐길 수 있다. 훗날 812 슈퍼패스트의 후속작은 하이브리드 모델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때까지 야수의 심장은 더 뜨거운 박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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