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의 노선이 달라졌다. 말리부와 크루즈 등 세단에 주력했던 과거와 달리, SUV의 가파른 인기 상승에 합류하고자 제품 라인업을 SUV 위주로 개편한 것이다. 여기에 쉐보레의 자부심인 픽업트럭은 이미 북미 시장에서 확실한 성과를 거둬왔다. 눈 깜짝할 새에 구축된 쉐보레 RV 라인업을 한꺼번에 만나봤다.
첫 타자는 어렵사리 만난 중형 SUV 이쿼녹스다. 동급에서 체구는 조금 작은 편이지만 다부진 인상이 딱 쉐보레 감성이다. 실내 계기판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됐으며 크고 간결한 디자인이 포인트다. 트렁크 공간은 최대 1,798리터로 무난한 크기를 갖췄다.
이쿼녹스는 1.6리터 디젤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32.6kg.m를 발휘한다. 엔진 스펙에 갸우뚱했던 고개가 가속할수록 이내 끄덕여진다. 가속 페달을 힘껏 짓눌러보지만 유유자적 풍경 즐기기에 여념이 없어 그저 웃음이 난다.
스티어링으로 전달되는 진동은 큰 편. 그러나 단단하게 세팅된 하체와 더불어 고속에서의 달리기 실력은 꽤 안정적이다. 코너를 돌아나갈 때도 자세를 능수능란하게 제어한다. 12.9km/L의 복합연비까지 더해지면 일상주행에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이번에는 굵직한 크롬 라인과 각진 디자인으로 무장한 픽업트럭 콜로라도에 올라탔다. 실내는 평범하다 못해 투박하지만 탁 트인 전방 시야와 곳곳에 적용된 수납공간 덕분에 괜스레 흐뭇하다. 적재용량은 1,170리터로 최대 400kg의 짐을 실을 수 있다.
북미와 달리 단일 파워트레인으로 출시된 콜로라도는 3.6리터 6기통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품었다. 최고출력 312마력, 최대토크 38.0kg.m를 바탕으로 하는 주행질감은 상당히 부드러운 편이다. 2톤이 넘는 차체를 가뿐하게 이끌어 꽤나 상쾌하다.
타면 탈수록 차분한 승차감은 인상적이다. 픽업트럭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과속방지턱이나 노면의 요철 등을 부드럽게 흡수하며 불쾌한 진동을 걸러낸다. 가속 성능은 약간의 숨고르기가 필요하지만 이내 넉넉한 출력에 힘입어 묵직한 펀치력을 자랑한다.
어느새 도착한 목적지는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어섬비행장. 노을 진 하늘과 바람결에 살랑대는 갈대를 눈에 담고 대형 SUV 트래버스에 몸을 실었다. 빗물이 내려앉은 진흙길을 달리며 움푹 파인 구덩이를 몇 차례 넘었지만 흔들림 제어가 수준급이다.
트래버스 역시 국내에서는 단일 파워트레인이다. 3.6리터 6기통 가솔린 직분사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최고출력 314마력, 최대토크 36.8kg.m를 발휘한다. 5미터가 넘는 몸집에도 불구하고 시원스러운 주행능력과 스티어링의 직관적인 반응이 장시간 운전의 피곤함을 덜어낸다.
저중속 영역에서 서스펜션의 상하 움직임은 바쁜 편이지만, 이마저도 탄력이 붙으면 부드럽게 힘을 밀어붙여 깔끔한 승차감으로 거듭난다. 다만 급격한 감속 시 브레이크는 약간의 밀림이 동반된다. 퇴근시간이 맞물려 정체를 겪은 트래버스의 평균연비는 10.1km/L로 측정됐다. 가솔린 대형 SUV임을 감안하면 실연비가 꽤나 우수한 편이다.
마지막은 라인업의 막내인 소형 SUV 트랙스다. 덩치 큰 차들을 연달아 타다보니 트랙스의 품이 유달리 아늑하다. 실내 개방감은 A필러의 과감한 앞트임 덕분에 형들 못지않은 편. 전방충돌경고, 후측방 경고, 차선이탈경고 등 알찬 안전사양 구성도 눈에 띈다.
트랙스의 파워트레인은 1.4리터 4기통 가솔린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최고출력은 140마력, 최대토크는 20.4kg.m로 전형적인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의 스펙이다. 엔트리 모델이라고 얕볼만한 실력은 아니다. 탄탄한 하체는 노면을 다부지게 움켜쥐고, 고속 영역에서도 문제없다는 듯 뛰어난 주행 밸런스를 유지한다.
4기통 엔진 특유의 소음과 바람을 가르는 풍절음도 곧잘 걸러내는 편이다. 경쾌한 초반 가속 성능과 이질감 없는 변속도 매력적이다. 브레이크의 응답성은 출력이 더 높아져도 손색없을 정도. 부드럽게 속도를 줄여 승차감을 해치지 않는다.
한동안 주춤했던 쉐보레는 정통 픽업트럭 콜로라도와 대형 SUV 트래버스를 연달아 출시하며 틈새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여기에 트랙스와 이쿼녹스의 간극을 채울 트레일블레이저까지 가세하면 RV 전문 브랜드로의 입지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성적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반격의 서막이 될지, 쓸쓸하게 막을 내릴지는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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